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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제공

인류세를 사는 인류 천재지변은 이제 인재가 되어간다

산업화 시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활동이 원인이 된 환경 변화를 보이는 이 시대를 ‘인류세’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인류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이 (환경) 변화의 원인이며,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질학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건 지표 화석이다. 지층으로 인류 활동의 연대기를 알 수 있는데, 우리 시대의 지표 화석은 ‘플라스틱’이 유력하다.


WRITER 이승엽

 

지질학적으로 현 인류가 사는 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말한다. 일부 학자들은 현 인류가 사는 시대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시대적으로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 아직은 의견이 분분해 비공식적인 시대 구분법이다. 인신세(人新世)라고도 한다.

 

198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인류의 산업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를 지질시대에 포함하자는 제안을 통해 ‘인류세’를 창시했다.

 

2000년 스토머와 크뤼천이 함께 쓴 기고문이 ‘인류세’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문서다. 이후 과학계에서 인류세라는 표현은 돌풍처럼 퍼져 나갔고, 사회적으로도 현시대의 환경문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무분별함, 민낯을 드러내다
지난 5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에서는 평택 도일동 옛 쓰레기 매립장의 지층 상태를 보기 위해 시추를 했다.


지하 4m 지점에서는 ‘스크류바’가 나왔고, 비닐과 옷가지, 비료 봉투와 스티로폼 등이 줄줄이 나왔다. 땅속 12.5m 지점에서는 ‘이백냥’이라는 라면 수프 포장재가 나왔는데, ‘이백냥’은 1986년 삼양에서 출시한 라면이다. 이처럼 쓰레기가 묻힌 매립지의 지층은 현대 인류 활동의 연대기였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약 26만 톤의 쓰레기가 매립된 곳이다. 약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야트막한 산야를 이루지만 그 속에는 현 인류의 무분별함이 고스란히 남았다.

 

 

현 인류의 지표 화석은 플라스틱?
인류세의 지표 화석 후보로는 플라스틱이 거론된다. 플라스틱은 현 인류가 만든 물질이면서 땅속에서 썩지 않고 오래 남는다. 이날 발견된 스티로폼도 미국의 화학업체 ‘다우케미컬’이 1940년대 발명한 물질로, 20세기 중후반 단열재, 포장재로 인류의 일상에 들어왔다. 그 어느 것도 자연적으로 존재한 적 없던 물질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제지질학연맹은 인류세 등재를 검토하고 있다. 연맹 산하 실무 연구그룹은 ‘1950년대가 인류세의 시점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플라스틱 등 자연이 아닌 인류가 만든 물질이 널리 퍼지고, 온실가스가 급증한 ‘소비자본주의 시대’다.


남욱현 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대적인 개념의 위생 쓰레기 매립장은 1950년대 전 세계로 확산해 분포하기 시작했다”며 “과거에는 퇴적물 운반과 퇴적이 자연의 힘으로 이뤄졌으나, 지금은 95% 정도가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의 쓰레기 매립장이 지질학에서 논의되는 ‘지층’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세의 끝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학자들의 경고대로 현실의 세계는 식량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썩지 않는 쓰레기로 넘쳐나는 우리의 세계는 제대로 된 식량을 생산하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다. 아름다운 생태계의 모습을 복원하자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 돼버린 건 아닐까.


우리 지구는 이미 다양한 이유로 멸종과 생성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홀로세든 인류세든 이 지질시대에도 끝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때는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결과들이 드러날 것이며 그 책임을 감당하는 것도 우리 인류일 것이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최근 우리나라에는 불과 한 달여 만에 때 이른 폭우와 강한 태풍으로 재난을 겪었다. 수도권을 공포로까지 몰아넣은 기록적인 폭우는 80여 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많은 수해민이 발생하는 재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1개월도 안 돼 미처 복구하기도 전에 대형 태풍까지 맞았다. 예보보다 그 세(勢)가 약해진 것이 크게 다행이었지만, 이번에도 큰 비바람은 남부지방을 비롯한 전국에 큰 상흔을 입혔다.


기상청에서는 경로를 예상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대형 태풍으로 보고 잠깐 살피러라도 외출을 자제할 것을 경고했다.


정말 천재지변이 맞나?
8월의 폭우와 9월의 태풍이 진행하는 동안 기상청의 예보를 들으며 바로 비와 바람의 세력이 커지는 이유를 고민하게 됐다.


해수면의 온도가 높으면 그 세력이 더욱 커지는데, 해수면의 기온을 상승시키는 원인이 바로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다. 기후 공부를 조금만 해도 아는 기초적인 내용이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온도, 기상 재난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던 학자들의 생각마저도 점점 통일되고 있는듯 하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식량난에서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인류에 미치는 많은 영향이 피부에 와닿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제 강남에서 제주까지 우리의 삶은 비록 폭우와 강풍의 문제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가까운 민생의 문제로 닥친 것이다.

 

그 와중에 기상청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두어 개가 조만간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예상치 못한 규모’의 태풍이 발생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뒤따라 떠오르는 질문 한 가지. 과연 이런 태풍의 위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기만 하는
게 그저 천재(天災)일까, 아니면 인재(人災)일까.

 

호들갑? 미래세대의 요구는 생존권
영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시위를 이끄는 한 단체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다. 이 단체의 시위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살고 싶다.’ 환경운동 단체가 절박함을 강조하려는 건 공감이 가고,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고 있는 것도 맞으니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멸종이라니, 너무 지나친 호들갑 아닐까.

 

미래세대들은 딱 잘라 “아니다”라고 말한다.

 

“끊이지 않는 대형산불, 사상 최장의 장마, 기록적인 폭염. 우리가 나고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들이다. 건강한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기성세대가 누려 온 소소한 일상이 앞으로도 가능할지 정말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청년 기후 행동 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의 활동가 올리비아 클라크(24·Olivia Clark)의 단호한 지적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우만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질책하고 있다. ‘무한한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등한시한 것들을 지적하고 있다. 미래 세대에게 배분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우리의 현실에서 너무 앞질러 챙겨 소모해버린 기성세대의 활동이 부른 문제들의 뒷감당을 하고 있다.

 

툰베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기후변화에 대한 미래세대의 질책은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며 쏘아붙인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4)의 질타에서부터 증폭됐다.

 

툰베리의 질타는 청소년들의 글로벌 기후운동 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FFF)’을 낳았다. 이들의 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툰베리가 불씨였다면 우리는 들불이다.’

 

독일에서 ‘FFF’와 그린피스 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기후운동을 펼치고 있는 15세 활동가 피오나(Fiona), 2019년 미국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등교 거부 시위를 이끈 그린피스 미국 사무소의 16세 활동가 애비 달링(Abbie Darling),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클라크는 한결같이 입을 모아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고 외치고 있다.


남일 취급하는 우리가 문제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당장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 지급해야 할 청구서에 적힌 금액을 더 중요한 문제로 봐서다. 지구가 파괴돼 우리 삶이 사라진다면 그런 숫자들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지난 8월과 9월의 폭우와 태풍 피해를 단지 청구서에 적힌 금액과 비교만 할 것인가? 20년 후 홍수, 지진, 태풍으로 내 집이 없어져야 기후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겠는가. 기후위기는 내가 이사 가거나 계절이 바뀐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를 더 먼저 느낀 미래세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외치고 있다.


“세계 곳곳이 불타고 내 삶의 터전도 불타는 날이 오기 전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인재’임을 인정해야 바뀐다
필자가 기후 환경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이미 늦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건 사실이다. 이미 늦었다. 그러면 이미 늦었으니까 외면할 것인가.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에게 모든 뒤치다꺼리를 넘기고 말 것인가.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바이러스, 무작위로 퍼붓는 폭풍, 폭염, 홍수, 장마 등의 천재지변으로 보이는 모든 현상을 인류의 발전하는 산업화에 원인을 둔다면 감히 인재(人災)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천재지변을 인재로 인정해야 위기에 대응하고,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현명함이다.


인간은 그동안 많은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왔다. 산업화속도가 빨라질수록 위기의 속도도 가속화되기에 이제는 단지 덜 쓰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법률적 제재가 보조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안 쓰는’ 위기대응이 절실하다.

 


아직 우리에겐 남은 자산이 있다
토종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토착종이 되어가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지만, 토종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사회적 운동과 정열, 전 세계 단 두 곳에 불과한 미래 노아의 방주라 할 수 있는 경북 봉화군의 백두대간 시드볼트 같은 시설들이 바로 우리의 자산이다.


식물과 작물의 종자 보관을 목표로 설립된 시드볼트는 2023년까지 30만 개의 종자를, 최종 200만 개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골프장의 자연 자산, 시너지를 만들자
무수한 산업화로 소모되고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국토는 자연의 면적이 더 넓다. 여기에 관리까지 기가 막히게 잘 되는 자연 재산을 가지고 있는 민간도 우리 주변에 꽤 많다. 바로 골프장이다.


골프장은 자연을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거의 유일한 민간에 속한다. 특히 자산 대부분이 자연 그 자체인 경우다.

 

옛날에는 눈만 돌리면 보이던 흔하디흔한 곤충마저도 고액으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서 예를 들어 반딧불이에 둘러싸일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리는 관광지가 될지 상상해보자.

 

실제로 미꾸라지 체험이나 논고둥 잡기 체험을 매일 여는 우포늪(경남 창녕)은 “하루 평균 500명 이상의 체험객을 받고 있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한, 이곳에 전 세계의 생태계와 청년 단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희소성’이라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을 더는 볼 수 없다는 불안함 때문이기도 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거의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잃어야 후회하는 건 인간의 습성이다.

 

그런 우리의 습성을 이제는 인정하고, 버리자. 미래를 예측해 미리 개선하는, 작은 투자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인류의 습성을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