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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어디든 간다” 최경주 프로

<장보고·최경주 배 골프대회>에서 만난 최경주 프로의 이야기

 

 

학교에 다니려고 역도를 하던 완도 소년은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골프 스타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꿈나무를 육성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국내 일정을 쏟아붓는 진짜 레전드가 됐다. 그 최경주가 한글날 완도로 돌아왔다.

 

(편집자 주) 재외동포와 모국기업인의 상생과 협력을 모색하는 교류의 장, 장보고 . 최경주배 골프대회를 위해서다. 1박 2일간 열린 다양한 행사에 참여한 최경주 프로의 강연과 코멘트를 인터뷰 형식으로 엮었다.

 

EDITOR 박준영   PHOTO 방제일

 

“이짝은 역도부 아니고 골프부다잉!”
최경주 프로는 역도 선수 출신이다. 그 시절엔 다 그랬듯 가난했다. 돈이 없었기에 엘리트 체육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저렴하게 학교 다닐 기회였으니까. 다만 너무 힘이 들어 ‘언제 그만두나’만 고민했다.


체형 분석을 종종했는데 팔이 길어서 역도에는 안 맞았다. 대신 골프에는 특화된 체형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역도를 해본 사람 나오라’고 했다. 나가니 ‘니는 이짝(쪽), 너는 저짝(쪽)’ 하면서 분류를 했다. 그러더니 그가 있는 쪽을 보며 “여기는 역도부 아니고, 골프부다잉!”이라고 했다. 최경주가 골프에 입문한 계기다.

 


잊을 수 없는 손맛
연습장에 갔는데 공이 엄청 널려있었다. 신입이니 공 정리를 해야 했다. 멀찍이 네트가 있는데 7번 아이언으로 네트를 넘기면 공 정리를 면제받는다고 했다. 드라마틱하게 첫 스윙이 제대로 맞아 나가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몇 개를 쳐보다 딱 한 번 정타가 났다.

 

그가 해본 야구나 역도의 쾌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손맛이 비교가 안 됐다. 최경주는 “그 한 타가 내 인생을 바꿨다. 그 때 가슴에 꽂힌 불꽃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만큼 강렬했다”고 회상한다.

 

 

‘이 좋은 잔디를 막 파도 된다고?’
1997년 미국 골프월드컵에 갔을 때다. 연습장이 너무 좋았다. 선배가 “여기 비싼 잔디라서 잔디 파면 쫓겨난다”기에 연습하면서 최대한 공만 떠내면서 연습했다. 안 쫓겨나려고.


“다음 날 한 프랑스 선수가 연습하는 걸 보게 됐는데 팔뚝만한 ‘뗏장’을 푹푹 파는 데 아무도 뭐라고 안하더라고요(웃음).”


그때 잔디를 파도 된다는 걸 알았다. 실내연습장 매트에서만 공을 치던 그였다. ‘골프선수라면 이런 환경에서 골프 쳐야 한다’고 느꼈다. 미국행을 꿈꾸기 시작한 순간이다.


시간이 지나 학교에 다니려고 역도를 하던 완도 소년은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골프 스타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꿈나무를 육성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국내 일정을 쏟아붓는 진짜 레전드가 됐다.

 


 

Q 한국에 오면 어떻게 지내는지.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주로 재단(최경주복지회) 관련 일을 한다. 동반 라운드도 재단에 기부한 분들과만 친다(웃음). 실제로 단순히 라운드를 위한 제안은 사양하고 있다. 대신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훌륭한’ 일을 하는 인재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디든 간다.


이번 장보고글로벌재단 행사도 ‘완도인이니까 오라’고 했다면 사양했을 거다. 장보고재단에서 크게 기부해주셨다. 나 역시 정말 많은 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여기 또 다른 나를 위해 그래 주실 분들이 계셨기에 기쁘게 참여했다.


Q 꿈나무 육성이 최경주의 다음 도전인 것 같다.
나는 3년 전 ‘사업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꿈나무 육성 사업은 계속할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골프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심어주고, 골프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그 아이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구성원을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의 인성이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게 내 미션이다.


Q 유망주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사실 재단을 만들기 전부터 기부는 꾸준히 해왔다. 2007년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큰 상금을 벌면서 본격적으로 재단을 만들게 됐다. 골프선수 이전부터도 나는 정말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다. 미국행도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다.

 

슈페리어는 28년 인연이고, SK텔레콤 대회는 지금도 출전하고 있다. 뜻이 맞아야 이렇게 오랜 인연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해준 건 인사하고, 안부 묻는 일이었지만 받은 건 크다. 그걸 돌려주고 싶고, 기왕이면 잘 돌려주고 싶다.


이번 재외동포·모국기업인 파트너십 행사 1일차 개회식에서 이순신 관련 강의가 있었다. 가장 공감한 내용이 ‘정의와 사랑’이었다.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가치다. 앞으로 살아갈 후대가 성장할 기반을 만드는 것도 정의와 사랑이다.

 

우리가 남기고 갈 건 정의와 사랑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밖에 없다고 늘 생각한다. 정의와 사랑을 심어주면 사회는 알아서 잘 돌아간다. 그런 일을 한다는 사명감도 더 커지는 것 같다.

 


Q 장보고·최경주배 골프대회를 고향인 완도에서 치렀다. 소감은?
바쁜 국내 일정 속에서 행사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정에 감동했고, 환대에 감사해 피로가 절로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이번 대회가 1회인데 내년에 2회를 진행한다면 꼭 참여하려고 한다. 나는 거절을 하면 했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다(웃음).


Q 이번 골프대회 당일,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정말 강하게 불었다. ‘골프의 가장 나쁜 적은 바람’이라는 말도 있다. 바람이 강한 날에 라운드하는 경우 조언을 해준다면?
바람이 강하기는 했지만 사실 선수로서는 일상적인 바람이다. 예를 들면 브리티시오픈은 이날 같은 바람 이상으로 부는 경우도 숱하다.

 

여러 번 밝힌 에피소드인데, 타이거 우즈는 연습장에 스프링클러와 제트기 팬을 틀어놓고 연습한다. 이제까지 내 연습은 형편없었구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선풍기를 예로 들면, 미풍과 약풍, 강풍이 있다. 그 바람의 차이를 느끼고 1단, 2단, 3단 스윙을 해야 하는데 아마추어는 그럴 여유가 없이 일단세게 치고 본다.

 

그런데 저항을 이기는 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스윙이다. 그런 스윙은 여유있고, 부드러운 스윙을 할 때 나온다. 바람이 강할 때는 여유 있게 치라고 조언하고 싶다. 또 한 가지는 평소 귀에 들리는 바람 소리,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가늠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는 것. 잔디를 뜯어 날려보는 건 한계가 있다. 사람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건 훨씬 예민하고 세밀하다. 단순히 ‘몇 바람이냐’는 식보다는 바람을 느끼라고 말한다.


Q 타이거 우즈와 친하다. 그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보다 어리지만 하는 행동이 탁월하다. 본인의 재능도 그렇고, 동료 선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은 선수다. 무엇보다 일단 사람이 좋다. 그리고 몸이 부드러워서.


Q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니 ‘몸이 부드럽다’는 표현에 대해 어서 설명해달라.
물론 골퍼로서 얘기다(웃음). 우즈처럼 창의적인 샷 메이킹을 하려면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그 상상을 구현해 줄 신체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부드러운 몸을 가졌다.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내면서 우즈의 희한한 샷들이 나온 것 아니겠나. 골프선수지만 골프 이상의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

 

Q 우즈에 대한 재미있는(이라고 쓰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들려줄 수 있는지.
우즈는 욕을 잘한다. 한국 욕을(웃음). 내가 세어보니 15가지 정도 알더라. LA 인근에서 나고 자라 한국 친구들에게 한국 욕을 찰지게 배워놨다(웃음). 모 브랜드 광고를 찍을 때 애드리브는 다 한국 욕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한번은 한국에서 그렇게 욕하면 안 된다, 특히 어른들께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더니 “난 외국인이잖아” 하더라. 그럴 때만 외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유쾌한 친구다.

 


Q 2010년 마스터스, 우즈의 스캔들 이후 복귀전에서 최경주를 지목해 경기를 치렀다. 

경기를 앞두고 “우즈가 당신과 같은 조가 됐다. 기자 50명이 당신한테 질문하려고 기다리니 준비하라”는 얘길 들었다. 나는 나가서 “우즈가 복귀전을 잘 치르길 바란다면 경기 외의 이야기를 그에게 묻지 마라”고 얘기했다. 다만 그 당시는 친해서라기보다는 원만하고 과묵해서 지목했을 거다. 실제로 맷 쿠차는 과묵하고, 나는 영어를 별로 못했으니까(웃음).


우즈는 내게 ‘브로’라고 부른다. 친근한 호칭 아닌가. 숏 홀에서 티샷할 때 2미터 앞에서 보고 있어도 서로 방해받지 않는 사이다.

 

Q 곧 연말이다. 2023년의 계획이 있다면?
여러 계획이 있지만 딱 하나를 덕담 삼아 한다면, 코로나19가 벌써 3년째다. 다른 것보다 내년에는 ‘코로나고 나발이고’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하고, 다 갈 수 있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