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모델 김봄 씨는 사실 작년에 ‘시니어가이드’라는, 골프가이드의 자매지로 연을 맺었다. 시니어가 되며 자신의 ‘부캐’를 찾아내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들을 만나던 시절이다. 젊은 시절 맹목적으로 일과 가사에 매달리던 시니어들이 자신의 ‘부캐’를 찾는 작업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렇게 제2, 제3의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은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면 신비로웠다. 그들은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일 할 때보다 더 몰입했고, 진짜 인생을 즐겼다. 여유로우니 즐기는 게 아니라, 즐기기에 여유로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달까.
그들은 보통 후회 없이 살고 있지만, 공통적인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도 이렇게 살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 아쉬움은 내게도 전이됐다. 지금 현재에서 후회가 남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였다. 때로는 현역 투어 선수보다 더 강한 아우라를 풍기는 시니어모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EDITOR 박준영 PHOTO 참사랑사진관
눈 내리는 날 오히려 포근함 느끼듯
12월은 언제나 다양한 감정을 부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호 표지를 고민하는 일도 그렇다. 올해 가장 뛰어났던 선수, 인상적이던 사건을 되돌아봤다. 유사 이래 매년 그랬듯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그러다 문득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래, 2022년의 마지막 호의 표지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이라고 하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는지. 내 경우는 뜬금없이 ‘사랑’이다. 12월은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절임에도 왠지 따뜻하다. 기부와 나눔의 소식, 한 해를 마감하며 오랜만에 만나 웃고 떠들 약속들, 한 해 마주했던 나쁜 일들은 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노력들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취해 밤거리를 누비던 숱한 12월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에 오히려 포근함을 느끼듯, 내게 12월의 키워드는 포근한 ‘사랑’이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려운 법
김봄 씨와 표지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에세이 때문이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스물아홉의 김봄’이 그려진 에세이다. 10년의 장거리 연애, 30년의 결혼 생활을 건너 그녀가 이룬 건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평범한 가정’이다.
인터뷰에서 ‘남편의 어떤 점에 꽂혔는가’라는 질문에 김봄은 웃었다. “사실은 그 나이에 가지고 있던 이상형은 아니었”단다. 대신 살다 보니 ‘이게 바로 내가 꿈꾸고, 그리던 그 모습이다’라고 느꼈다. 인터뷰를 통해 모델로서 또는 자연인으로서의 꿈이나 목표를 여러 번 물었다. 새해 계획이나 위시리스트도. 그때마다 김봄의 답은 한결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큼만 평범하게 큰 이슈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관심을 받는, 화려한 삶을 사는 셀럽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게 가장 행복할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지금 가장 평범한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2월 연말, 하고 싶었던 것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새해를 ‘각오’하는 이 시즌에 수많은 골프 스타와 셀럽을 두고 ‘김봄’을 표지 인물로 세운 건 그런 이유다. 그간의 표지와는 조금은 핏이 다를지라도.
겨울에 만난 봄
김봄과의 만남과 표지 촬영,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이뤄진 통화에서 에디터는 포근함을 느꼈다. 사실은 크게 대단할 것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찌든 내 일상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감상이 훅 치고 들어온다.
12월, 날씨가 추워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과 휴머니즘이 묻어나는 미담, 로맨스 영화의 성수기라서인 것처럼, 그녀의 평범함과 행복감이 전이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의 초입에서 ‘봄’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