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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칼럼] ‘천연’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자

온 세상이 천연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져있다. ‘천연’ 성분이라고 하면 무조건 몸에 좋고, 이롭기만 하다는 건 잘못된 맹신이다. 천연물의 독성이 합성물보다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지만, 천연 성분이 1%만 함유돼도 ‘천연’이라며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된다는 건 알고 있는지.

‘천연’이라는 단어가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WRITER 이승엽

 

 

‘천연’에 대한 맹신
온 세상이 ‘천연’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져있다. 정작 전문가들은 천연물이 건강에 특별히 이롭지도 않을뿐더러, 합성물이라고 더 해롭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천연물의 독성이 합성물보다 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에 대한 우리의 맹신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와도 같은 실정이다.


‘자연 유래’의 함정
물론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 인공적인 것보다 더 안전하고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항상’ 안전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실례로 독버섯도 석유도 따지고 보면 다 자연에서 난 천연원료가 아닌가. 이렇듯 우리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천연의 기준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제품 용기와 성분표에는 자연재료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어 자연재료의 추출물이나 오일을 넣어 만든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식물에서 추출한 소량의 원료에 화학물질들을 섞어 만든 ‘화학합성 물질’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때도 화학합성을 거쳤지만, 어디까지나 식물 추출물을 원료로 썼기 때문에 ‘천연 유래’, ‘자연 유래’라고 표기할 수있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야말로 모호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코코넛 지방산’을 원료로 하는 합성 계면활성제인 ‘라우라미도프로필베타인’도 한편으론 발암물질 오염 가능성이 큰 성분이지만, ‘코코넛 유래 계면활성제’라는 단어로 포장해 홍보되면, 소비자는 ‘안심하고 써도 되는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는 제품이구나’라는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합성’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또한, 정말 안전하고 좋은 추출물이나 좋은 오일일지라도, 아주 극소량만을 함유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천연 성분이 단 1%만 들어가도 ‘천연제품’이라고 이름 붙여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일염을 연구하는 모 대학 교수는 “염전은 공개된 장소인 데다 위생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며 “천일염은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소비자들은 수많은 오염물을 그대로 먹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한다.


한편 ‘천연’ 마케팅의 실상이 이렇다면 차라리 검증된 합성첨가물을 사용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최낙언 향료연구원은 “바나나와 우유를 혼합하면 바나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합성첨가물로 바나나 맛을 내면 우유를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다”며 합성 감미료의 순기능을 설명한 바 있다.


‘천연’이 품질 보증하지 않아
‘천연’이라는 단어만으로 제품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그 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천연이라는 말이 품질을 보증하는 말이 아니다”라며 “좋은 재료라 할지라도 가수분해와 같은 공정을 거치면서 품질이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단 여기에서 언급한 몇 가지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천연’이라는 함정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바로 ‘그린워싱’이나 다름없다.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은 하지 않으면서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행태를 그린워싱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녹색 세탁이다. 천연, 자연을 표방하면서 실상은 그 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적으니 눈 가리고 아웅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자연은 과거의 그 자연이 아니다
지구의 환경은 이미 ‘생물의 다양성’을 걱정해야 하는, ‘제6차 종말’까지 논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해 있다. 자연은 더 이상 과거에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던 그 자연이 아니다. 그런 현황을 고려한다면, 덮어놓고 의심부터 할 일도 아니지만, 적어도 ‘천연’이라는 단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 ‘천연’을 검색하면 무수한 광고와 상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천연 성분 겨우 한두 방울로 우리 인간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다는 듯 말하는 상품들 말이다. ‘천연’은 때로 달콤하게 인간을 건강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처럼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최근에는 예술가들도 자연재료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의 화가 마이 짱은 그려놓은 스케치 위에 나뭇잎을 손으로 찢거나 가위로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나뭇잎이다 보니 보관 중 색이 바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모래 그림의 창시자인 일란씨는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와 가져온 예쁜 색깔의 모래를 유리병 속에 넣어두고 보다 모래 그림을 착안하게 되었다. 일란씨는 2006년 베트남 APEC 회담에 참석한 각국의 대통령에게 모래 초상화를 선물 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천연재료를 사용하여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도예가 오형신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오 작가는 세간의 민화 속 호랑이를 소재로 도예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는 한때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의 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건강 악화 등으로 회사를 정리한 뒤, 40대의 늦은 나이에 늦깎이 학부생이 되어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원 도자가 기술학과에서 유약을 연구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때 발표한 논문이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유약’이었다.


작품 테마부터가 독특하다. 민화 속 호랑이 하나하나에 우리네 삶을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표현하는데, 청자나 백자를 구워내는 온도인 1,250℃의 고온에서 그의 작품이 태어난다. 이는 반죽을 툭툭 던졌을 때 나오는 주름과 굴곡을 억지로 없애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맞춰 작품의 형태를 매만지는 오형신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 ‘색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데, 오 작가는 “유약의 활용에 그 묘미가 있다”고 말한다. 예의 그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유약 얘기다.

 

천연에 열광하기 전에 자연을 돌아보자
자연은 인간이 영원히 지구를 떠나지 않고 살아갈 유일한 조건이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인간의 가까운 곳에 서식하면서 그동안 인류와 생태계를 함께 구성하던 수많은 생물 종이 하나둘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수많은 식물의 화분 매개작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꿀벌들의 개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학생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구상나무 역시 그 개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전 세계가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표어로 이제 ‘생물 다양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인간은 우리의 문명과 자연을 융화하여 함께 생존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무수한 빌딩과 기계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날을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