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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에 부는 아시아 돌풍, LIV를 소환한다?

세계 여자 골프 주름잡는 아시아계 선수들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국내 골프계는 물론 팬들도 아쉬움을 표하는 시기다. 지난 1~2년이 특히 그랬다. 한국이 주름잡던 LPGA 리더보드에서 태극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지만, 대신 아시아계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세계랭킹 10위 이내 8명이 아시아 지역 출신이거나 아시아계다. 바야흐로 아시아 돌풍이 LPGA에 불어닥치고 있다.

 

 

5승 합작한 태극낭자들
LPGA투어 리더보드가 태극기로 수놓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박세리의 LPGA투어 진출 이후 매년 새로운 스타플레이어들이 나왔고,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매 시즌 10승 이상을 수확한 한국 여자골프가 최근에는 다소 빛을 잃은 모양새다. 실제로 LPGA투어 대회의 3, 4일 차 중계방송을 틀면 최소 톱 20위권에 10명 이상은 이름을 올리는 시기는 아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양희영의 시즌 최종전 우승을 포함해 2023시즌 총 5승을 만들었다. 고진영이 HSBC 월드챔피언십과 파운더스컵에서 2승을 올려 체면을 살렸고,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1승을 올린 유해란이 2023시즌 L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했고, 김효주가 어센던트 LPGA에서 우승을 보탰지만, 2019년 15승을 합작한 과거를 떠올리는 팬들은 입맛을 다시게 됐다.

 


한국 대신 아시아가 점령한 LPGA투어
그럼 최근의 LPGA투어 리더보드는 다시 서구권 골퍼들이 가져갔을까? 아니다. 지난 12월 JTB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팀 대항전인 솔하임컵을 제외한 33개 대회 중 26개에서 아시아 국적 또는 아시아계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수치로는 78.8%에 달한다.

 

LPGA에 나선 아시아 선수들의 맹활약은 롤렉스 세계 랭킹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세계 랭킹 10위 내 8명이 아시아 지역 출신이거나 아시아계다.

 

베트남계 릴리아 부(미국, 1위), 태국계 셀린 부티에(프랑스, 3위), 한국계 이민지(호주, 5위) 등은 부모가 아시아인이고, 중국의 인뤄닝(2위)과 린시유(10위), 한국의 고진영(6위), 김효주(7위), 2022년 신인상을 받은 태국의 아타야 티띠꾼(9위) 까지 8명의 선수가 세계 랭킹 상단을 주름잡고 있다. 서구권 선수는 미국의 넬리 코다(4위), 잉글랜드의 찰리 헐(8위) 2명뿐이다.

 

상금순위로 봐도 상위 20위까지 아시아 출신이 아닌 선수는 찰리 헐(6위), 브룩 헨더슨(14위), 넬리 코다(20위) 등 3명에 불과하다. 상금순위 3위 앨리슨 코퍼스(미국)는 필리핀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19위 앨리슨 리(미국) 역시 아일랜드인 조부와 한국인 조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한국계다.2023시즌 올해의 선수상 부문 역시 상위 10명 중 9명이 아시아 출신이며, 신인상 부문도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아시아계였다.

 

 

LPGA “우리는 아태계 사회와 함께한다”
2008년 LPGA투어는 소속 선수들의 영어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침을 세웠던 적이 있다. 여론은 물론이고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에서도 ‘차별 정책’이라며 비판했고, 불과 2주 만에 해당 방침은 철회됐다.

 

세월이 지나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21년, LPGA는 “우리는 인종차별을 참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미국 내 동양인 상대 증오 범죄가 급증하던 시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LPGA는 당시 “우리는 아시아태평양계(AAPI) 사회와 함께한다”며 “이들에 대한 괴롭힘과 증오 범죄, 차별 등은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LPGA투어인 만큼 차별에 대한 미국사회의 의식 수준이 올라간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LPGA 내에서 아시아계 선수들이 콘텐츠로서 강력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LPGA투어 역사상 가장 오래 세계 랭킹 1위를 지킨 선수는 한국의 고진영(163주)이다.

 


세리키즈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박세리가 동양인 여성이 미국 골프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한 이래 각국에서는 자국의 박세리를 배출했고, 그 선수들을 롤모델로 삼은 2세대와 3세대가 LPGA투어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아시아 돌풍이 본격화했다.

 

실제로 세리키즈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각국의 LPGA투어 진출 1세대 선수들이 이미 자신의 롤모델로 박세리를 꼽았었다.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에 못 미침에도 최근의 아시안 돌풍이 한국인들의 ‘국뽕’을 자극하는 이유다.


LPGA 유일의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상위 8개국에 출전기회(각국 4명)가 주어지는데 2023년에는 서구권 국가로 미국, 잉글랜드, 스웨덴, 호주 4국이 참가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태국 4국이 참가했을 정도로 아시아 선수들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LPGA의 한 기둥이 됐다.

 

물론 이 대회에 출전한 32명의 선수 중 아시아계 선수도 19명에 달했다. 현 LPGA투어의 서사는 확실히 아시아계 선수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Q시리즈 선전, 韓 부흥의 태동될까
이런 시기에 LPGA Q 시리즈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퀄리파잉 시리즈인 Q 시리즈는 LPGA투어 입성을 앞둔 이들의 최종 입학시험으로, 풀시드가 없는 100여 명의 선수가 6일간 108홀을 돌며 경쟁하는 이른바 ‘죽음의 레이스’다.

 

Q 시리즈에서 20위 이내에 들면 다음 해 LPGA투어 대회의 대부분에 출전할 수 있고, 21위부터 45위까지는 조건부 출전권과 엡손 투어 출전권(2부)이 주어진다.


KLPGA투어를 뛰다 도전한 선수들 중 이소미가 공동 2위, 성유진과 장효준이 공동 7위로 LPGA투어 진출 자격을 얻었다. 2023 KLPGA투어 다승왕(4승)에 오른 임진희도 공동 17위로 합격증을 받아 2024시즌 LPGA투어 풀시드권자 4명이 추가됐다. 프로 16년 차 이정은5(공동 23위), 홍정민(공동 45위)도 조건부 출전권을 받게 됐다.


한국 여자골프는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해 2024시즌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미 LPGA 진출을 공언한 루키 3인방과 자숙 중인 윤이나 등의 어린 선수들이 머지않아 이 무대에 도전할 것이고, 국내 무대를 ‘씹어먹은’ 박민지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 여자 골프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전망이 어둡지는 않다. 신인왕을 받은 유해란도 “우리(한국)의 실력이 떨어진 건 아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은 이 Q 시리즈에서 역대 7명의 수석합격자를 냈는데 1997년 박세리로 시작해, 최근에는 2021년 안나린, 2022년 유해란이 계보를 이어 2023년에는 이소미가 3년 연속 수석을 따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대신 지난 2019년 LPGA투어를 뛰었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밀려난 로빈 최가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그래도 팬들은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진출 소식이 들려온 한국 여자 골퍼들의 2024시즌 활약을 기대하는 중이다.


무명 청산 기회 잡을까, 로빈 최
2023년 Q 시리즈 수석의 영예를 안은 로빈 최(26)는 호주 시드니 출생이지만,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한국계 선수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18년 Q 시리즈에서 공동 45위로 LPGA 첫 투어 카드를 획득하며 데뷔했지만,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루키 시즌에 조건부 출전권으로 LPGA투어 12개 경기에 출전했지만, 컷 통과는 3회였고, 상금도 10만 달러 수준에 그쳤다. 롤렉스 세계 랭킹에서도 현재 339위로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는 약 다섯 시즌을 LPGA 2부 투어인 엡손투어에서 뛰었는데, 3회의 준우승이 개인 최고 순위였고, 톱10은 16회였다. 2부 투어 통산 상금은 24만4,851달러다. 그렇게 2부에서도 우승은 없었지만, 2023년 10월 호주 WPGA 투어 ‘웹엑스 플레이어스 시리즈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대회에서 데뷔 후 첫 우승을 신고했다.

 

여세를 몰아 이번 Q 시리즈에서 수석 합격을 한 그가 2024시즌 LPGA투어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가장 최근에는 스코티 셰플러가 증명했듯 무명 생활이 길다고 뜨지 말란 법 없고, 반짝스타 정도에 그치라는 법도 없으며, 무엇보다 스포츠 팬들이 애정을 보이는 스토리라인이 아닌가.


이처럼 아시아 돌풍이 LPGA투어에 ‘다양성’을 불어넣으며 콘텐츠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LPGA투어의 마음 한구석은 싱숭생숭하다.

 

 

‘하지만 LIV가 출동하면 어떨까?’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제 고대화석처럼 느껴지는 밈처럼 ‘여자 골프계에도 LIV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중이다. 지난 2023년 10월 고진영은 “사실 LPGA투어 구성원 일부는 LIV골프의 적극적인 투자를 내심 원하는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얼마를 제시하면 이적할 것 같나”는 질문이 오갔다고 한다. 물론 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미국에 진출한 고진영 본인은 잔류의지를 밝혔지만, 꽤 많은 선수들이 이미 LIV골프의 출동(?) 상황을 가정하며 셈을 하고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수년간 PGA와의 대립을 보인 LIV는 지난해 6월 갑작스런 ‘합병’ 발표가 나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LIV로의 이동에 명분이나 명예, 역사관을 들먹이지 않는 분위기가 퍼지자 그간 버티고 버티던 욘 람마저 이적을 선언하고 나섰다.

 

LPGA투어 커미셔너인 마쿠 서먼 몰리는 지난 2022년 7월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렉 노먼(LIV골프 CEO)이 대화를 원한다면 전화를 받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그렉 노먼이 미국 팜비치 포스트에 “내부적으로 여자 대회 관련 논의를 했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LIV골프가 향후 여자 골프계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LIV골프가 출범하기도 전 아람코는 LET(레이디스 유러피언 투어)에 LIV골프와 유사한 팀 시리즈 6개를 개최했다. 유수의 선수들이 이 대회에 출전했고, 아람코는 렉시 톰슨을 직접적으로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사우디국부펀드가 가세한다면 LPGA투어도 어느 ‘라인’을 탈지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PGA투어와 LIV가 화해 아닌 화해를 하며 어정쩡한 동행을 하는 현 시점 이후의 분위기는 달라질 것 같다. 세계 톱 리그인 PGA투어야 상금을 올리면서 버틸 수 있었지만, LPGA투어의 입장은 그렇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이 희석되고 있긴 하나, LIV골프에 대한 저항은 단순한 기득권 이슈가 아니라 ‘스포츠워싱’ 이슈였다. PGA와 LIV가 한창 치고받던 2022년 당시 LPGA의 전설 베스 대니엘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어 사우디 LIV골프를 고려하는 데에 ‘큰 그림을 봐야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 투어보다 확연히 낮은 상금 규모로 오래 지속된 LPGA투어의 랭커들은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전 세계 랭킹 1위 크리스티 커는 “LIV의 자본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남자 투어에 비해 여자 투어의 상금은 너무 적었다”고 밝혔다.


넬리 코다 역시 ‘매주 1천만 달러의 상금을 거는 대회가 있다면 출전할 것인지’ 질문을 받고 “거부할 선수가 있겠느냐”고 답했다. 나중에 LIV골프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는 걸 깨닫고 “현재로선 LPGA투어에 머물 생각”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정치·사회적 사안임을 배제하면 프로 선수로서의 속내가 어떨지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LPGA의 한 베테랑 캐디는 “LIV는 경쟁을 촉진하며, 경기 포맷 면에서도 여성 골프에 더 걸맞다”며 PGA투어의 독식 체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성장, LIV 소환하나
현재 LIV골프가 여자 투어를 출범할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팀 시리즈나 남녀 혼성 대회 등 이벤트성 대회에 관심을 더 보이고 있다. 출범한다면 남자 골프계와 같은 논란과 과정을 겪을 것이 명약관화다.

 

문제는 이미 더는 대립각을 세우지 못하고 합병을 발표하며 판정패한 것으로 여겨지는 PGA의 전철을 LPGA가 그대로 밟을 거라면, 이미 남자 골프계에서의 과정을 지켜본 여자 선수들의 이탈은 조금 더 빠를 것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합병하게 된 PGA에 잔류한 선수들이 실리도, 명예도 얻지 못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LIV는 이미 유럽 투어에 지원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투어에 관심이 높다. 국내 사정도 KLPGA 규모의 성장으로 굳이 리스크를 안고 해외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과거보다 덜한 시점이다. 다시 말해 끝없는 향상심이나 도전의 가치보다는 경제적 기회의 가치가 더 높아진 상황이다.

 

LPGA에 돌풍을 일으키는 아시아 골퍼들이 성장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면 LIV골프는 반드시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아시아 골퍼들의 이같은 성장이 LIV골프를 소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