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돼라” 이 오래된 격언을 보면, 어쩐지 리브 골프와 PGA 투어가 생각난다. 거액을 받고 리브 골프로 떠난 선수를 보면 이상하게 머리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 거기에 리브 골프를 각 방송사에서 하는 영상을 보면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요새 말로 ‘극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까지 리브 골프를 싫어했나? 불현듯 깜짝 놀라면서, 왜 대체 리브 골프를 이렇게까지 혐오하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나를 포함한 골퍼들이 리브 골프를 보지 않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해 나름 정리해봤다.
EDITOR 방제일
리브 골프는 근본이 없다
새롭게 생긴 리그는 당연히 전통이나 문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이 딱 그랬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만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려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스포츠가 야구와 미식축구다. 여기에 골프 또한 백스토리에서 이미 다뤘듯 영국과 미국의 알력 다툼이 크게 있었다.
마치 그때처럼 PGA 투어와 리브 골프가 ‘투어의 미래’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좀 속된 말로 하면 리브 골프는 ‘스포츠 워싱’의 나쁜 단면이자, 전 세계를 향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골프를 존중했다면, 자신만의 전통이라도 만들었을 텐데 딱히 노력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가진 무한 자본을 이용해 잘하는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일까? 이 근본 없는 ‘3일’짜리 리브 골프를 볼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화가 난다.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무언가 흥행이 될만한 요소라도 만들어야 할 텐데 도통 그런 생각이 없다. 그래서일까? 리브 골프를 보면 프로의 대결이라기보다, 그저 골프를 좋아하는 동호회 선수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 그들을 위한 ‘아마추어’ 대회를 진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절함이 없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 유명해진 엘라 휠러 윌콕스의 ‘고독’이라는 시의 첫 시구다. 나는 예전부터 이 글귀를 볼 때마다 대회 4라운드 18홀 챔피언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마지막 한 홀에서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우승자는 모두의 축하를 받고 웃는다. 반면 아쉽게 패배한 골퍼는 홀로 눈물짓는 모습, 그 모습이 자꾸만 내 뇌리에 남아있다.
물론 어디서 본 것은 아니다. 그저 이미지일 뿐이다. 골프는 잔인한 스포츠다. 아니다. 프로스포츠 자체가 잔인하다. 결국 승자는 오직 한 명이나, 한 팀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좀 나을지도 모른다. 프로스포츠는 1년에 한 팀만이 우승컵을 든다. 골프는 한해 대략 20~3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할까. 물론 이것도 잘하는 선수의 얘기다. 평생 우승컵 한번 못 들어보고 수없이 사라진 골퍼가 얼마나 많을까.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그래서 우리는 100전 101기 이런 선수의 이야기에 감동을 한다.
이 하나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이 실패했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승컵을 들며 눈물을 보이는 그 간절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간절함’이 결국은 모든 선수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원동력이다. 문제는 리브 골프에는 이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주말 골퍼처럼 혹은 직장인처럼 그들을 골프를 친다. 물론 대회에 상금도 걸려 있고, 트로피도 있다. 이 상금과 트로피에 선수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명예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돈도 이미 계약금으로 천문학적 액수를 받았으니 상금 따위야 뭘. 이런 생각이 든다. 간절함이 없는 프로 세계의 우승은 당연히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대중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승리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과 우승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과정과 결과에서 감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가 없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스포츠를 대변하는 가장 완벽한 단어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타인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서다. 누군가의 서사에 공감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본다. 그래서 스포츠를 본다. 그래서 골프 중계를 본다. 리브 골프는 이 드라마가 없다. 드라마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서사가 없다. 역사가 없으니 서사가 있을 리 만무하고, 간절함이 없으니 서정이 있을 리 전무하다.
기 싸움이 없으니 라이벌도 없다. 마치 주말 골퍼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회가 진행된다. 내가 굳이 이걸 시간을 들여서 볼 이유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에 드라마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드라마라면 일견 있어야 할 주연과 주연을 방해하는 악역이 있어야 한다. 리브 골프는 다 악역뿐이다. 악역이라도 사연 있는 빌런이 있으면 얘기는 다르다. 이들에게는 사연도 없다.
그래서 대중들이 리브 골프를 외면하는 것이다. 끝으로 사족을 붙일까 한다. 프로스포츠는 결국 비즈니스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프로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은 결국 ‘돈’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리브 골프로 간 이들은 자신들의 그간 노력을 ‘돈’으로 보상받았다고 착각한다.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프로의 돈은 결국 팬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리브 골프의 돈은 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다. 사우디 국부펀드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프로’가 아니다. 그저 리브 골프라는 하나의 거대 기업에 고용된 ‘직장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