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50회 맞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남긴 기록들

1974년 PGA 투어가 야심 차게 선보인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초반에는 일정과 장소가 정착하지 못해 수난을 겪었다. 애틀랜타CC에서 첫 대회를 개최한 이후, 1975년 텍사스주 콜로니얼 CC에서, 1976년에는 플로리다주의 인버러리 CC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다 1982년 대회가 열리는 TPC 소그래스에 힘겹게 정착했다. 이후 1988년 대회명에서 토너먼트가 빠지면서 지금의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됐다. 이름과 대회 코스는 정착했지만, 일정은 정착하지 못했다. TPC 소그래스에서 첫 30년은 3월 중순에 개최됐다. 대략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2주나 3주 앞두고 열렸다.

 

그러다 2007년 일정이 5월로 변경됐다. 이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때문이다. 일정 변경으로 6개월 동안 매달 큰 대회가 개최됐다. 4월 마스터스, 5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6월 US오픈, 7월 디 오픈, 8월 PGA 챔피언십, 9월 투어 챔피언십이다.

 

정착할 줄 알았던 일정은 2017년 PGA 챔피언십이 5월 개최를 발표하며 또다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 대회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겹치는 것을 우려한 PGA 투어는 결국 3월로 일정을 변경했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기나긴 유랑 끝에 이제는 ‘최다 상금’, ‘제5의 메이저 대회’란 별칭을 얻으며 서서히 투어에서 수많은 기록과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50주년을 맞은 더 플레이어스가 챔피언십이 남긴 기록과 역사를 Q&A로 알아보자.

 

EDITOR 방제일 PHOTO PGA 투어 공식 SNS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최다 우승자

 

1974년 9월께 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위치한 애틀랜타 컨트리클럽. 이곳에서 당시 PGA 투어 커미셔너였던 딘 버멘과 조 데이가 PGA 투어를 대표하기 위한 대회에 고심하다 새로운 대회를 창설했다. 대회명은 토너먼트 플레이어 챔피언십으로 정했다. 초대 챔피언은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였다. 

 

니클라우스는1974년 열린 초대 대회 우승 뿐 아니라 1976년과 1978년에도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는 총 3회로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세 번의 우승이 각각 다른 코스였다는 점에서 니클라우스의 기록은 빛난다. 다만, 이 기록에 한 가지 흠이라면 TPC소그래스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니클라우스에 이어 타이거 우즈와 프레드 커플스, 데이비드 러브 3세, 할 서턴, 스티브 엘킹턴 등이 2번의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 그리고 올해 스코티 셰플러가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우승하며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한편, ‘제5의 메이저 대회’라 불리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현재 가장 우승하기 힘든 대회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투어에서 출전 선수의 면면이 나머지 4대 메이저대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마스터스는 출전 선수가 100명 이하라 너무 적다. US오픈과 디오픈은 예선을 거친 아마추어 선수가 출전한다. PGA 챔피언십 또한 20명의 클럽 프로가 참가한다. 반면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는 오로지 최고의 기량을 갖춘 투어 프로만 참가한다. 말 그대로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인 것이다.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최연소 우승자

정답부터 말하면 바로 한국의 김시우가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다. 김시우는 지난 2017년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만 21세 11개월의 나이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당시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하며 이언 폴터와 루이 우스트히즌을 3타 차로 제쳤다. 김시우 이전에 최연소 기록은 애덤 스콧이 가지고 있었다.

 

애덤 스콧은 2004년 이 대회에서 23세 8개월의 나이로 우승했다. 김시우는 애덤 스콧의 기록을 1년 이상 앞당긴 것이다. 김시우가 우승할 당시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을 비롯해 로리 매킬로이,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제이슨 데이 등 세계 톱 랭커들이 모두 대회에 참가했을 만큼 치열했다. 이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이후 김시우는 202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에 자부심을 느낀다며”며 “이 기록이 앞으로도 깨지질 않길 바란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록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김시우는 7년 만의 막판 뒷심을 보여주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김시우는 2라운드까지 7언더파 공동 24위였다. 하지만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7개(보기 1개)를 쓸어 담으면서 올해 첫 톱10에 진입했다. 김시우는 앞선 7개 대회에서 한 차례도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시우는 “항상 이 코스에 오면 마음이 편한데, 우승 이후로는 우승권에서 경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것도 있었는데, 올해 마무리를 잘해서 내년에 더 자신감을 안고 플레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최소타 우승자

지금은 리브 골프의 수장인 그렉 노먼은 PGA 투어와 앙숙 관계이자 골프계의 ‘대표 밉상’이 됐다. 그래도 그렉 노먼은 한때 PGA 투어의 영웅이자 전설이었다. 1980년대 ‘백상아리’란 별명으로 투어에서 활약한 노먼은 1994년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24언더파 264타로 정상에 올라 최소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노먼이 세운 기록은 1993년 닉 프라이스가 세운 우승 스코어보다 무려 6타나 적은 기록이다. 1974년부터 올해까지 이 대회 우승자들의 평균 타수가 276타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노먼이 세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 감이 올 것이다. 물론 30년이 지난 지금은 코스 개조가 많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달라진 코스의 구조와 난도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기록인 것은 분명하다. 노먼은 이 기록을 세운 그해 평균 최저 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바든 트로피까지 수상했다. 이는 그가 받은 세 번째 바든 트로피였다. 바든 트로피를 세 차례나 수상했으며 최저타 기록을 세운 선수에게 수영하는 바이런 넬슨 트로피를 다섯 차례나 수상한 그렉 노먼. 또 우즈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1986년부터 331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킨 골퍼 그렉 노먼. 지금과는 달리 30여년 전에 투어 프로로서의 그렉 노먼은 PGA 투어를 호령하며 다양한 역사와 기록을 만든 골프계의 영웅이자, 전설이었다.

더 플레이어스의 핵심, TPC소그래스 17번 홀

이 대회에 찾는 갤러리 대부분은 ‘악마의 홀’로 불리는 17번 홀에서만 운집해 있다. 이 17번 홀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파 3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무려 3만 6,000여 명의 갤러리가 모여 선수들의 샷을 관람했다. 많은 드라마가 이 홀에서 쓰였기에 무려 11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앵글로 이 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다 잡아낸다. 이 홀은 다른 파 3홀보다 전장이 짧아 피칭 웨지로 온그린이 충분하지만 아일랜드 그린에 시시각각 방향과 세기가 달라지는 바람으로 대형 사고가 터진다. 해마다 50개 이상 공을 수장시켜 ‘죽음의 홀’이란 악명도 있다. 밥 트웨이는 2005년 이 홀에서 9오버파 12타를 쳤다. ‘역대급 참사’의 주인공이다. 올해도 꽤 많은 골프공이 물에 들어갔다. 1라운드 10개, 2라운드 13개, 3라운드 6개, 4라운드는 18개 등 총 47개다. 지금까지 이 홀에서만 수장된 골프공이 총 973개다. 마틴 레어드는 최종일 17번 홀에서 악몽에 시달렸다. 티샷을 두 차례 물로 보내면서 7타 만에 홀 아웃했다. 기준 타수보다 4타나 더 친 것이다. 눈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환호도 터졌다. 라이언 폭스는 1라운드 17번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17번 홀에서 나온 통산 14번째 홀인원이다. 앞선 16번 홀에서도 이글을 잡아내 1983년 이래 이 대회에서 ‘백투백’ 이글을 작성한 1호 선수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이 홀에선 총 버디가 79개가 나왔다. 아,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다. 이 문제의 정답은 바로 시니어 투어의 전설 ‘베른하르트 랑거’다. 그는 이 홀에서만 25개의 버디를 기록했다.

 

최경주의 마지막 PGA 투어 우승

한국남자골프 플레이어 중 유일한 메이저 챔피언인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이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 못지않게 주목도가 높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두 명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2011년 최경주와 2017년 김시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인 건 물론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최연소 우승자인 김시우 뿐 아니라 최경주의 우승 과정도 매우 극적이었다. 첫날 공동 25위, 둘째 날 공동 11위로 순위를 점차 높이던 그는 셋째 날엔 악천후로 10번 홀까지만 경기를 치러야 했다. 대회 최종일 최경주는 3라운드 잔여 홀과 4라운드 18개 홀 등 26개 홀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3라운드 잔여 홀에서 2타를 줄여 공동 2위로 뛰어올랐다. 최종 라운드에서 2타를 더 줄이면서 데이비드 톰스와 합계 13언더파 동률을 이뤘다. 최경주는 코스의 '시그니처 홀'인 17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홀에서 첫 퍼트를 홀 가까이 붙여 파를 지켰다. 반면 비슷하게 홀에 붙여 파를 노렸던 톰스는 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그야말로 혈투 끝에 이룬 극적 우승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경주는 이 대회를 끝으로 더는 PGA 투어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그래도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만큼 부와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 대회는 최경주의 마지막 우승이자, PGA 통산 8번째 우승이다.

 

기권 위기에서 역사를 쓴 스코티 셰플러

어쩌면 봄은 스코티 셰플러 위한 계절일지 모르겠다. 이번 대회까지 통산 8승 가운데 3·4월에 거둔 승수가 무려 6승이다. 나머지 2승도 마음은 봄이 움트는 2월 중순에 올린 것이다. 이번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우승도 ‘어우셰(어차피 우승은 셰플러)’였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그는 또다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2년 연속 우승은 50회째를 맞은 이 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못 이룬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 대회 우승이 셰플러에 뜻 깊은 이유는 ‘부상 투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 잰더 쇼플리에게 5타나 뒤진 공동 6위였다. 막판 뒤집기는 무리인 듯 보였다. 그러나 3월의 셰플러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6개로 8타를 줄이면서 최종 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2라운드 때만 해도 셰플러는 우승은 커녕 기권 직전이었다. 12번 홀 티샷 때 목에 불편함을 느꼈고 극심한 통증이 계속됐다.

 

드라이버 샷 거리가 확 줄어 280~290야드에 머물렀다. 퍼트할 때 홀 쪽으로 목을 돌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14번 홀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어렵게 이어간 경기에서 셰플러는 3언더파를 쳐 24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을 이어갔다. 3·4라운드에도 언더파를 적어 연속 기록은 26라운드로 연장됐다. 3라운드 6번 홀부터 31홀 연속 노 보기 기록도 작성했다. 목에 테이핑을 하고 우승한 셰플러는 “기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으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오늘은 확실히 좋아져서 편하게 경기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남들 눈에 수월하게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려면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이게 내가 연습 과정에서 늘 사투를 벌이는 이유”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