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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부끄럽지 않으니까 됐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각오’를 하게 된다. 젓가락질 수준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가 아니라면 어떤 일을 앞뒀던 각오라는 걸 한다. 자주 해본 일인 경우는 ‘남다른 각오’까진 아니라도 말이다.


수십 년 넘는 시간 동안 평생 무대 위에 살아온 가수도 “무대에 서기 전엔 떨린다”고 고백하고 타이거 우즈도 대회 첫 날 첫 티잉 그라운드 앞에서는 긴장한다는데,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긴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각오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오란 보통 ‘잘 해내야지’로 귀결된다. 에디터로서는 특히 인터뷰를 준비할 때 그렇다.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질문이면서도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질문을 뽑아가서 인터뷰이의 감탄을 자아내고 ‘인터뷰를 떠나 얘기하게 돼 즐거웠다’는 소감을 듣고 싶어진다.

 

길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간의 기억을 되짚어 볼 때 인터뷰를 ‘잘 해야지’라고 각오하는 것보다 ‘부끄럽지 말아야지’라고 했을 때의 결과물이 유독 좋았다. 잘 하려는 것과 부끄럽지 않게 하려는 건 사실 같은 얘기다. 따져보면 잘 하는 것 안에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게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과정은 달라졌다. 인터뷰를 잘 하려는 거든, 부끄럽지 않게 진행하려는 거든, 좋은 질문을 뽑아야 한다는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잘 하려는 마음과 쪽팔리기 싫은 마음은, 결과적으로 잘 하는 데까지 가는 과정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은 부담감을 유발하고, 실수나 무리수로 이어진다.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은 책임감을 유발하고 눈이 빠지더라도 한 번 더 돌아보는 끈기로 이어진다. 이건 그저 내 경험이다.

 

‘부끄럽지 말아야지’는 ‘실수하지 말아야지’와는 또 조금 다르다. 잘 해야만 부끄럽지 않은 게 아니고, 실수했다고 그 자체가 부끄러울 것도 아니다. 부끄럽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게으른 몸을 벌떡 일으키게 만드는 엉덩이 밑에 몰래 놓인 압정이 되고, 만족하려는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와 꽂히는 비수가 된다. 이것도 그저 내 경험이다.


여하튼 ‘부끄럽지 말아야지’라는 마음가짐은 결과적으로 골프가이드 에디터로서의 역할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싶다. 여전히 그저 내 경험이지만, 부끄럽지 말아야겠다는 그 마음이 현생에 미치는 영향은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강했다.


이건 결국 내 얘기다. 겨우 ‘부끄럽지 말자’로 시작한 것 치고는 제법 깊숙이 몰입했던 골프가이드의 에디터, 편집장이라는 역할을 내려놓으려 한다. 생각보다 여러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돌이켜볼 때 부끄럽지 않으니까 됐다. 어디에나 끝은 있고, 끝은 또 시작 아니겠나.

 

여러 얼굴과 목소리와 메시지들이 지나간다. 지난 2년간 급변침을 반복하던 골프가이드를 꾸준히, 그러면서도 느긋이 기다려준 얼굴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내게는 응원, 내지는 독려로 다가온 말과 행동을 한 얼굴들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무심결에 지나치던 어느 곳에서 골프가이드가 보이면 나는 그 책을 펴볼 것 같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오랜만에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것도 같다. 그간의 좌충우돌을 떠올리자니 이만하면 꽤 괜찮은 작별이다.


미숙한 항해사를 만나 암초에 이리저리 치이며 항해를 거듭해온 골프가이드를 지켜봐 준 여러 관계자와 독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며, 골프가이드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한 명의 골린이이자 골프가이드의 새로운 독자 한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의 응원은 필요하다. 앞으로 이 지면을 채울 새로운 X에게도 같은 애정을 보여주시길.


편집장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