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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기술 도핑, 그리고 ‘꿈의 59타’

최근 PGA 투어에 갓 데뷔한 신인 헤이든 스프링어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기록을 작성했다. 지난 7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실비스의 TPC 디어런(파71)에서 열린 존 디어 클래식 1라운드에서 12언더파 59타를 친 것이다. 그는 보기 없이 이글 2개와 버디 8개를 쓸어 담아 ‘꿈의 59타’를 기록했다. 이는 100여 년이 넘는 골프 역사에서 고작 14번밖에 나오지 않은 특별한 기록이다. 그런데, 이 대기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좀 씁쓸해졌다. 이런 특별한 기록이 최근 유난히 자주, 그리고 쉽게 나오는 느낌을 들었기 때문이다.

 

EDITOR 방제일

 

골프에 꿈의 50대 타수가 있다면, 육상에서는 마의 10초대와 2시간의 벽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우사인 볼트와 일리우드 킵초게에 의해 깨졌다. 볼트야 정말 육상에 최적화된 몸을 가졌으니 논란이 크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리우드 킵초게가 마의 2시간의 벽을 깼을 때부터는 슬슬 ‘기술 도핑’에 대한 논란이 스포츠계에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이 성적을 조작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는 '약물 도핑'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반면 최근에는 장비나 도구의 힘을 빌려 경기력을 향상하는 이른바 '기술 도핑'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스포츠용품회사들이 각종 기능성 운동화를 만들어내면서 이 운동화를 신은 마라톤 선수들이 잇따라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이는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약물 없이 선수 능력을 향상하는 첨단 기술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둔 가운데 전 세계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메달을 따는 것은 정말 신의 가호라고 불릴 정도다. 단 한끗 차이로 메달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나 판정을 둘러싸고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약물 도핑이다. 호르몬제는 일시적으로 집중력이나 신체 능력을 향상하기 때문에 선수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있는 선수 중 일부를 무작위로 지정해 약물 검사를 시행한다. 그런데 도핑에는 약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쓰는 장비도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운동 장비들도 개량되고 있는데, 이 장비를 쓰는 선수와 쓰지 않는 선수 간에 기록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이를 ‘기술 도핑’이라고 부른다.

 

‘기술 도핑’ 논란의 시작은 육상이었다. 100분의 1초라도 줄여야 하는 기록의 경기인 육상은 가장 직관적이며 가장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운동화와 운동복, 그리고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될 이 육상에는 의외로 참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경기복은 1g이라도 가벼워야 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1g이라도 가볍고, 뛰는 선수의 에너지를 복원해줘야 한다. 이 가운데 나이키에서 몇 해 전 킵초게를 위해 제작한 러닝화가 논란이 됐다.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킵초게는 역사상 처음으로 42.195㎞ 코스를 1시간 59분 40초 만에 주파했다. 7명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린 비공인 기록이지만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전문가들은 킵초게의 기록 경신을 오로지 킵초게의 러닝 능력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킵초게는 나이키가 선수만을 위해 특수 제작한 러닝화를 신었는데 밑창 중간에 탄소섬유로 만든 판이 스프링 효과를 내는 운동화였다. 이 신발을 신으면 뛰는 힘을 10% 이상 크게 높여준다고 한다. 스프링 효과 덕분에 착지 후 도약력을 높여주며 무게도 180여 g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특별한 러닝화를 신고 뛰면 선수는 마치 내리막길을 뛰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2~2019년 10km, 하프마라톤, 마라톤 등 3개 종목에 출전한 전 세계 남녀 엘리트 육상선수들의 최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나이키에서 제작한 특수 러닝화를 신은 2017년 이후 마라톤 선수들의 점점 단축됐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여자 선수에게서 두드러졌다. 이 러닝화를 신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 선수는 자신의 기록을 2분 10초 줄여 1.7%의 기록 단축 효과를 봤다. 심지어 자신의 기록을 2.3%까지 단축한 선수도 있었다. 마라톤계에서 이 정도 단축 기록은 기술 혁신을 넘어서 그야말로 사기에 가까운 것이다. 이에 세계육상연맹은 특정 선수만을 위해 만든 운동화는 사용할 수 없다며 킵초게가 촉발한 논란을 해소하려고 했다. 이에 더해 공식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화 규격도 만들었다. 세계육상연맹은 새 규정에서 “신발 밑창의 두께는 40mm 이하여야 하며, 탄소 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섬유판이 1장인 기존 시판 제품은 사용할 수 있지만, 섬유판이 3장으로 알려진 ‘킵초게 신발’은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골프와 ‘기술 도핑’

경기복과 운동화. 이 두 가지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육상도 이렇게 기술 도핑 논란이 일어날 정도인데, 무려 14개의 클럽과 각자 다 다른 공을 사용하는 골프야말로 어쩌면 이 ‘기술 도핑’ 논란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골프계는 암묵적으로 이 기술 도핑에 대해 침묵해 왔다. . 사실 골프계의 기술 도핑 논란은 다른 종목보다도 역사가 깊다. 지금은 모두가 쓰는 장비도 과거에는 기술 도핑 논란거리였다. 지금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스틸 샤프트만 해도 처음 등장해 인기를 끌 땐 지나치게 성능이 뛰어나 골프의 묘미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와 아마추어 가리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으며, 나아가 그라파이트 샤프트에 점점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현대 골프공의 모태가 된 제품 중 하나인 ‘하스켈 볼’도 초기에는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처음 하스켈 볼이 등장했을 때 그 압도적인 성능으로 기술 도핑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후 하스켈 볼은 한 시대를 지배하며 모두가 쓰는 공이 되었고, 이후 더 뛰어난 성능의 ‘솔리드 코어 볼’이 등장한 뒤에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은 골프의 많은 것을 바꿨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은 오늘날 ‘대 장타의 시대’를 이끌었다. 골프 클럽과 골프공 등 기술의 발전으로 골프를 보는 재미 또한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술의 발전만큼 선수들의 능력 향상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헤이든 스프링어가 기록한 ‘59타’다. 스프링어는 2019년 프로로 전향해 올해 PGA투어에 데뷔한 신인이다.

 

지금까지 정규투어에 19개 대회에 나섰고, 지난 3월 푸에르토리코 오픈 공동 3위가 최고 성적인 ‘평범한 선수’다. 골프에서 꿈의 스코어다. 그날 하루 골프신이 왔다고 해서 기록할 수 있는 그런 스코어가 아니다. 또, 골프란 스포츠와 골프 코스들이 그렇게 쉽게 타수를 줄일 수 있게 설계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꿈’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물론 스프링어는 이날 최대 341야드의 장타와 그린 적중 시 홀당 퍼트 수 1.36개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어느 정도 운도 분명히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운만으로 이런 대기록을 작성했다기에는 어딘가 어폐가 있다.

 

2016년부터 9년 동안 8차례 나온 꿈의 ‘59타’

지금까지 PGA 투어에서 50대 타수는 13명이 달성했다. 1977년 멤피스 클래식에서 알 가이버거(미국)가 처음 작성한 이후 스프링어까지 모두 14차례 나왔다. ‘8자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만이 유일하게 2차례 기록했다. 그는 2013년 BMW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전반 28타, 후반 31타를 쳤다. 특히 2016년 미국 코네티컷주 크롬웰의 TPC 리버 하일랜드(파70)에서 벌어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27-31타를 적어내 PGA 투어 사상 첫 ‘58타의 사나이’가 됐다. 당시 이글 1개와 버디 10개로 ‘12언더파 58타’를 찍었다. PGA 투어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 동안 6차례 59타의 기록이 나왔다.

 

6년에 한 번꼴로 나왔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9년 동안 8차례나 쏟아졌다. 매년 50대 타수를 친 골퍼가 등장한 셈이다. 물론 50대 타수를 쳤다고 우승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이버거, 데이비드 듀발(미국·1999년 봅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 스튜어트 애플비(호주·2010년 그린 브라이어 클래식), 저스틴 토머스(2017년 소니 오픈), 브랜트 스니데커(이상 미국·2018년 윈덤 챔피언십) 등 4명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12명의 선수가 ‘톱 10’에 올랐다. 유일하게 부진했던 선수는 케빈 채플이다. 2019년 밀리터리 트리뷰트 2라운드에서 59타를 치고도 공동 47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PGA 투어에서 59타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기량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투어 프로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부터 프로 골퍼를 목표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선수들이다. 이들의 스윙이 기계처럼 정확하다. 정확도뿐만 아니라 파워도 갖췄다.

 

아무리 어려운 홀이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홀을 공략한다. 여기에 브라이슨 디섐보의 ‘장타 실험’ 이후 선수들은 모두 장타를 날리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 중 78명이 평균 300야드 이상을 보낸다. 이로 인해 골프 경기가 장타에 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코스 전장도 덩달아 길어졌다. 여기에 당연히 골프공과 클럽, 골프화에 최첨단 기술이 속속들이 도입된다. 뛰어난 골프용품 덕분에 획기적인 비거리와 스핀 컨트롤을 구사하게 됐다. 올해 용품 업계는 관용성에 초점을 맞췄다. 연초부터 관성모멘트(MOI)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테일러메이드와 타이틀리스트, 핑, 젝시오, 캘러웨이 등이 ‘MOI 10K’ 이상 제품을 선보였다. 선수들의 능력과 기술의 발전에 PGA 투어는 골프장의 전장을 늘리고, 그린을 어렵게 세팅하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스코어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 또한 규제를 위해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골프공의 비거리 규제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행 시점은 2028년 1월이다. 시속 127마일의 스윙 스피드로 타격했을 때 공이 비거리 317∼320야드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런 행보에 선수들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대다수의 선수는 거리 제한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저스틴 토머스와 브라이슨 디섐보 등은 ‘이해할 수 없는 조처’라고 반발했다. PGA 투어 통산 7승 챔피언인 웨브 심프슨(미국)은 “비거리 문제는 골프장 건축에서 비롯됐다. 도그레그 홀과 좁은 페어웨이, 깊은 러프, 작고 단단한 그린이 필요하다. 코스 세팅, 벙커, 나무 배치 등으로도 충분히 비거리 억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올해 PGA 투어에서 평균 318.9야드를 날리며 장타 부문 1위에 올라있는 로리 매킬로이는 R&A와 USGA의 움직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혁신은 모든 스포츠의 한 부분이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런 혁신이 해당 종목이 걸어온 길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매킬로이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는 “요즘 골프공은 너무 멀리 날아간다”며””무엇인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골프공 제작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선수들은 8000야드짜리 골프장조차 길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기술 도핑 논란은 이제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이미 과거에 전신 수영복 논란이 한 차례 있었다. 폴리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이 전신 수영복은 부력을 높이고 물의 저항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선수들이 폴리우레탄 전신 수영복을 입기 시작하자 2009년 로마 수영선수권대회 당시 43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선수들은 전신 수영복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전신 수영복은 2010년 퇴출당했다. 이런 기술 도핑은 반드시 규제해야 하는 걸까? 킵초게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기술의 도움도 받는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스포츠 선수도 기술과 발을 맞춰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로 인해 새로운 역사와 기록이 쓰일 것이며, 인간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뛰어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어쩐지 앞선 전설들이 남긴 기록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꿈의 59타에서 이제 꿈이란 단어는 삭제해야 옳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