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를 비롯한 국내 금융계가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on)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등 다양한 지원을 등에 업고 고속 성장해 온 핀테크 업체들이 기존 금융 산업의 영역까지 잠식해 오면서, 미래를 위한 변신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계좌 조회 및 이체 등 간단한 서비스만 제공하던 국내 핀테크 업체들은 4차산업 지원책 및 규제 샌드박스 시행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에 기존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규제 역차별'이라며 볼멘 소리도 나온다.
3일,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계열사 '토스페이먼츠'가 공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말 LG유플러스의 PG 부문을 인수한 후 시장 진출을 준비해 왔다. '토스페이먼츠'의 출범으로 가맹점 결제 정산 주기가 평균 7영업일에서 2영업일로, 가맹점 결제 연동까지 걸리는 시간도 2주에서 당일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달 부정결제 사고에도 예정대로 토스페이먼츠에 이어 올해 하반기 토스증권을, 내년에는 토스뱅크를 선보일 계획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미래에셋캐피탈과 함께 SME대출(가칭)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대출은 네이버에 입점한 스마트스토어 온라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이다. 온라인 소상공인 사업자에 적합한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ACSS(Alternative Credit Scoring System: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ACCS와 FDS시스템을 기반으로 SME를 위해 제공해오던 ‘퀵에스크로’, ‘스타트제로 수수료 프로그램’에 더해 ‘SME 대출’과 ‘빠른 정산’ 프로그램을 연내에 오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페이가 작년 발행한 전자문서는 약 5300만건으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 공인인증서 폐지에 따라 카카오페이도 인증서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결제 사업망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최근 신세계백화점과 해외 직구 사이트인 아이허브에도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핀테크 업체들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정부의 정책도 뒷받침 됐다. 규제 샌드박스 시행 1년여를 맞아 금융위는 지난 31일 금융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한 통합 지원체계 사이트로 전용 홈페이지를 신설했다. 그동안 관련 기관별 홈페이지에 흩어져 있던 규제 샌드박스 정보를 일원화해, 핀테크기업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더욱 내실있게 운영하고 핀테크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 그동안 각각 운영돼 온 핀테크지원센터 홈페이지와 핀테크종합포털도 통합 개편했다. 금융위는 "앞으로도 금융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와 핀테크 포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핀테크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대형 금융 기업들은 '규제 역차별' 해소가 필요하다고 나서는 한편, 이동통신사들과 적극 협업에 나서는 등 디지털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5일부터 시행되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개정 법률) 개정안을 앞두고 규제 완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 마이데이터 사업 전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마이데이터 사업 예비허가 사전 신청을 마친 시중은행들은 테크핀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초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은행, 카드, 보험, 통신사 등에 흩어진 개인 금융거래 정보 등을 일괄 수집해 각 금융사에 퍼져있는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금융상품 자문 등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올해를 디지털 전환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하반기 신한경영포럼에서 "디지털 리더십을 CEO·경영진 선임에 주요 자격 요건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신한금융은 디지털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해 진옥동 신한은행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성대규 신한생명 사장, 정문국 오렌지라이프 사장, 이성용 신한DS 사장 등 최고 경영자(CEO)를 디지털 핵심 기술 후견인으로 지정하며 의지를 나타냈다.
KB금융은 IT 전문인력만으로 운영되는 은행 영업점인 'KB인사이트'를 선보인다. 시중 은행 최초로 알뜰폰 서비스인 '리브엠'을 운영중이기도 하다. 또 KB금융은 자사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KB스타터스' 출신 스타트업 센드버드와의 협업에도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핀테크를 포함한 다양한 기업들과의 업무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데이터 플랫폼뿐만 아니라 이종의 데이터와 결합된 초개인화 분석?AI(인공지능) 플랫폼 등 다양한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API(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2018년 '디지털 비전 선포식'을 여는 등 일찌감치 디지털 전환을 강조해 왔다. 당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디지털 격변 시대에도 '손님의 기쁨'이라는 금융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며 "디지털 비즈니스의 중심은 결국 사람, 즉 휴머니티(Humanity)라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하나금융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조직 개편에 나서며 디지털뱅킹 관련 조직을 '미래금융그룹'으로 통햅해 효율적인 디지털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해 3월부터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를 순차적으로 도입하며 반복적 수작업 업무를 자동화하며 비용 절감을 이뤄냈다.
우리은행은 마이데이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난 20일 '마이데이터 라이선스 준비 TFT(태스크포스팀)'를 출범했다. TFT는 우리은행의 마이데이터 사업 전략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을 도출하고 상품 및 서비스 개발, 인프라 구축, 이해 상충 방지, 내부통제 등 마이데이터 산업 진출에 있어 모든 업무를 총괄해 수행하게 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융 데이터와 비금융 데이터를 모아 고객에게 꼭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1등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마이데이터 산업 발전과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혁신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내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조찬 모임 자리에서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서비스 출현, 가격 인하 등 긍정적 측면을 가진다"면서도 "하향 평준화보다는 상향 평준화를 말하는 금융지주 입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다만 너무 풀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점검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은 "5대 금융그룹의 건의사항이 하나의 안으로 모아졌다"며 금융 소비자 보호,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 간편결제 사업자에 후불결제를 허용함으로써 카드사에 역차별,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 정보 불균형 문제 등을 언급했다.
핀테크 업체들의 성장은 거대 금융그룹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기존 금융그룹들이 안정성과 자산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금융산업의 주류를 더욱 굳히게 될지, 핀테크 기업들이 새롭고 간편한 서비스로 이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