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보며 ‘괴물’을 꿈꾼 남자가 있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에디터 또한 한강을 보며 꿈을 꿨다.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다. 꿈을 꾸자 그게 현실이 됐다. ‘2022 한강스위밍크로스챌린지(이하 한크스)’ 포스터를 발견하면서부터 말이다.
EDITOR 방제일
늘 지하철에서만 바라본 한강, 언젠가 저곳을 건너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영으로. 물론 생각만 해야 했다. 나도 가끔은 이런 내가 싫다. 어쨌든 생각이라도 한다. 핑계를 대보자면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라서, 나도 인간이라서다.
인간은 변화가 없는 한 똑같은 삶의 방향을 유지한다. 말 그대로 관성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쳇바퀴 도는 짐승과 인간이 점점 진하게 겹치는 아이러니, 이제 낯선 것도 아니다. 이 관성을 탈피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일상과 조금 다른 분야로의 도전도, 학원에 다니며 무언가를 죽도록 배워야 하는 이유도 결국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다. 어쩌면 도피인지도 모르겠다. 현실로부터의 도피. 그 도피마저도 의지만으론 단발성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할 땐 돈을 낸다. 일단 돈을 내면 간다. 그리고 한다.
왜? 돈이 아까우니까.
어쨌든 (해야)한다
수영해서 한강을 건너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나는 2022 한크스 포스터를 본 순간, 바로 결제부터 했다. 돈을 내면 하니까. 참가비는 49,000원. 단돈 오만 원에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설렘이 대뇌 전두엽을 휘감나 싶었으나 다음 순간 찾아온 건 ‘겁’이다. 덜컥 겁이 났다. ‘한강 건너다 죽는 거 아냐?’
진짜다. 죽진 않겠지만 못 건너면 죽을 만큼 수치스럽다. 건너면 죽을 만큼 힘들 거고. 건너는 건 둘째치고 한강의 똥물로 죽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래저래 ‘죽는다’.
‘건넌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지하철 창 너머로 본 한강은 길다. 길고 넓다. 새삼 이렇게 한강의 너비가 길었던가 싶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도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의 하늘을 보는 내 마음에는 먹구름이 꼈다.
‘해병대 출신 맥주병’의 한강 도하 작전
에디터는 해병대를 전역했다. 우습게도 수영을 하지 못하는 해병대’였’다. 전역 후 수영이란 놈은 내내 콤플렉스가 돼 나를 따라다녔다. 전역 후 누군가 ‘수영 잘 하시겠네요’ 하면 나는 갑자기 쭈구리가 됐다. 이 찝찝함을 제거해야 했다. 수영할 줄 아는 걸 넘어 잘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강습과 도전을 계속했다. 결국, 수영을 배웠다. 약 1년간 고강도 강습을 통해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수영이라는 놈을 잊었다. 체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간 수영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지독히 물이 싫었다. 물보다 싫은 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서였다.
마음속에 품은 하나의 신조가 있다. ‘나 자신과는 절대 싸우지 말자’다. 우습게도 진짜다. 그래서 운동도 타인과 겨루는 종목만 즐겨한다. 나 혼자서 극복해야 하는, ‘극기’를 해야하는 운동을 지극히 싫어했다. 러닝도, 수영도 그래서 싫다. 힘들면 자꾸만 그만두고 싶기 때문이다(해병대는 어떻게 문제없이 전역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자신에게 매번 졌다. 자꾸 지니 피했다. 대신 타인과의 대결에서는 종종 승리를 맛보는 재미로 운동을 즐겼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한크스’를 보게 됐고, 무작정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극기보단 ‘극걔’가 즐거우니까
이런 챌린지를 함께 즐기는 군대 동기(사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러나 일주일 먼저 입대한 선임이지만 나는 그를 동기이자 친구로 여긴다)가 하나 있다. 연락하니 기다릴 것도 없이 ‘콜’이라는 답장이 왔다. 역시 동기 녀석과 같이하게 되니 벌써 호승심이 서서히 지펴지는 게 느껴졌다. 동기부여도 했겠다 놓고 지낸 수영 실력을 점검해야 했다. 역시는 역시. 나름 마스터했다고 여긴 수영 실력은 엉망이 됐다. 그럴 법하다. 수영을 배운 후 5년간 수영을 하지 않았으니.
동기도 나와 똑같이 수영 콤플렉스를 가졌던 입장이다. 녀석도 이미 여러 차례 수영에 도전했고, 이제는 마스터 수준에 오른 터였다. 그런 둘이 처음으로 다시 찾은 수영장에서, 나는 200m를 채 못 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꽂히는 녀석의 안타까운 시선. ‘정말 괜찮겠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라는 듯 여유 있는 눈빛으로 녀석의 시선에 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드디어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남은 시간은 불과 3주뿐. 그날부터 일주일에 3일은 수영장에서 사는 사람처럼 드나들었다. 원래 누군가한테 배우기보다 스스로 부딪히며 몸으로 체득하는 편이라 자유 수영 위주로 연습했다.
한강 종단 2㎞, 평생 안줏거리 획득
한강의 폭은 대략 9백 미터에서 1천2백 미터다. 그걸 왕복해야 하니 이 챌린지를 완수하려면 대략 2㎞는 수영해야 한다. 쉬지 않고 수영해 건널 수 있을까. 솔직히 겁이 났고 불안했다.
불안감을 떨치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노력이다. 그 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수영장에 ‘혼자’ 갔다. 유튜브를 탐독하며 장거리 수영법을 배웠고,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 오래 수영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챌린지를 하루 앞두고 처음으로 1㎞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영했다.
기쁜 마음에 인증샷을 찍어 녀석한테 보냈다. 내친김에 다시 한번 1㎞ 쉬지 않고 수영에 나섰다. 다시 한번 성공했다. 슬슬 자신감이 올라왔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체중이나 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조금 슬림해진 것도 같다. 무엇보다 수영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무엇보다 ‘이제 다음 주면 이 지긋지긋한 수영장도, 챌린지도 끝’이라 생각하니 벌써 완영한 듯 행복했다.
이제 2022년 8월 23일 토요일은 내게 ‘왕년에 수영으로 한강을 건넌 날’이 되리라. 늘 한강을 보면서 수영으로 한번 건너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 소박한 꿈을 이룰 날이 다가온 것이다. 물론 평생의 안줏거리 하나를 마련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서울 하늘에 구멍이 뚫린 날
한크스 개최 날짜를 앞두고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중부지방 일대에 쏟아졌다. 물난리가 났다. 행사도 부득이하게 연기됐다. 기껏 마음을 다잡고 준비했는데, 연기됐다니 마음 한구석이 턱 하고 풀리는 것 같았다. 행사는 열흘 뒤인 9월 3일로 잡혔다. 다시 3주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어쩐지 해이해졌다. 실미도에서 죽기 살기로 훈련받고 IBS에 몸을 실었다가 의문의 복귀를 당한 대원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잠자던 ‘귀차니즘’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수영도 한강도 다 귀찮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않았다. 한크스고 한강 도하고 다 때려치울까. 솔직히 그런 심정이었다. 물론 그럴 순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에게 ‘한강을 건넌다’고 호언장담해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식을 들은 박준영 편집장이 이 챌린지를 ‘방기자가 한다’라는 주제로 도전 시리즈 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면서 반짝이던 눈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오리발을 내밀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을 앞두고 3일간 수영장을 방문하며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이제 1㎞ 정도는 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감도 확 늘었다. 거기에 내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핀(FIN)이다. 일명 ‘오리발’로 불리는 핀은 수영을 아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극강의 비밀병기다. 수영을 조금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도 이 오리발을 끼면, 아반떼였던 몸이 아반떼 터보 스포츠가 된다. 그만큼 빨라진다.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실 당초 목표는 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건너는 것이었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덧붙인다.
100m도 못 가던 방 해병, 도하 준비 끝
오매불망 기다렸던 한크스가 드디어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태풍 힌남노가 상륙하고 있었지만, 서울 하늘은 아직 맑았다. 한크스가 드디어 내일이라 생각하니 몸이 긴장하는지 자꾸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제대로 나오는 것도 없이 불안함에 변기 위에 계속 앉아 있었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9시까지 행사장소에 도착하려면 이제는 자야 했다. 자차로 대회장이 열리는 잠실 한강공원까지는 1시간가량 소요되기에 아침 7시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자야 한다’는 굳은 일념하에서 잠을 청했다.
한크스 당일이 밝았다. ‘도전자’인 나 대신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한 시간 동안의 이미지 트레이닝, 눈을 뜨자 드디어 대회장이다.
이미 많은 참가자가 몸을 풀고 있었다. 대회장에는 수많은 행사 요원과 대회 참가자, 참가자의 가족들로 북적였다. 그제야 비로소 한강을 건너러 왔다는 실감이 났다. 몸을 풀며 비장의 무기인 오리발을 가슴팍에 꼭 끌어당겼다.
유난히 맑았던 날, 한강을 건너다
이제 드디어 한강을 건널 시간이다. 한강 물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더러워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서울의 젖줄인 한강에 몸을 담갔다.
수온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였다. 눈앞에는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장엄하게 서 있었다. 그곳을 향해 열심히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마치 보트처럼 내 몸이 롯데월드타워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한강 물이 더러워 수경을 썼어도 수심은 보이지 않는다.
배영으로 전환했다. 시야에 하늘이 가득 찼다. 정말 끝내주게 맑았다. 드디어 꿈을 이뤘다. 처음에는 다리가 닿지 않아 겁이 났지만 500m 지점을 지나니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듯 자유롭게 한강을 거닐었다. 그 속에서 본 모든 풍경이 새로웠고, 아름다웠다.
한여름 낮의 꿈
앞선 한강 도하 이야기는 모두 상상이다. 지어낸 얘기란 뜻이다. 대회 당일, 수많은 대회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한크스는 대회 취소를 발표했다. ‘힌남노’로 인해 팔당댐 방류가 새벽부터 시작됐고, 한강 수심이 깊어져 수영 불가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써보지도 못한 오리발은 내려두고, 몇몇 기념품을 받아들었지만 대체 이날을 위한 열정과 노력에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냥 자기만족으로 삼아야 할까. 어쨌든 안줏거리는 나오긴 나왔으니까. 심심한 기본 안주 정도라 문제지만.
방류를 미리 알았다고?
한크스는 취소됐지만, 아직 대회 참가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회 주최 측인 송파구 수영연맹은 9월 15일 현재까지 대회 취소에 대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하다못해 좀 더 일찍 알려줬으면 이 수많은 참가자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주최 측인 ‘송파구 수영연맹’이 무척이나 야속했다. 한강의 서쪽 끝에서 온 에디터의 경우는 문제 축에도 못 들었다. 대회를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에서 온 참가자도 다수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회 개최 일주일 전 이미 팔당댐 방류가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대회를 강행한 것이다. 물론 금전적인 손해가 막심했기에 대회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주최 측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회 참가비 환불을 비롯해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건 책임회피다.
행사당일 주최 측은 ‘오전 대회는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어정쩡한 대답으로 인해 오후 참가자들까지 혼선을 빚게 했다. 대회 전에는 수없이 보내던 알림 문자와 카톡도 대회 후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과 대회 운영이 2022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이 도전은 진행형이다
다시 대회 당일로 돌아가 보자. 대회가 갑작스레 취소되자 허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별수 없이 하나둘 자리를 뜨는데 차라리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면, 이보다는 덜 처졌을 어깨들이란 생각이 들어 괜히 콧날이 시큰하다.
나와 동기, 그리고 ‘도전자를 내조한’ 아내 또한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한강 도하를 했어도 이만큼 피곤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맥이 탁 풀렸는지 한 게 없는데도 피로가 몰려왔다. 피로보다는 허탈함이었으리라.
하늘은 아직 내게 한강 도하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도전은 그래서 진행형이다. 내년 한크스도 분명히 열릴 것이다. 내년엔 더 철저하게 준비해 오리발 없이 폼나게 한강을 건너볼 생각이다. 하늘이 허락하든 말든 방 기자가 간다. 방 기자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