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번의 ‘방기자가 한다’에서 에디터가 잘할 수 있고, 이미 해본 것들을 도전했다. 그래서 큰 부담감 없이 방기자가 한다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번 카이도배 골프대회를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 할 도전을 해야함을 직감했다. 그렇다. 바로 골프다.
골프 에디터가 된지는 7년이 됐다. 골프와 나의 인연은 남들과 달리 글을 통해 시작했다. 7년 전, 주변 모두가 골프를 시작하라고 했을 때 이미 사회인 야구와 동호회 농구, 수영과 마라톤 등 각종 다른 운동을 매진하고 있었기에 골프를 배울 마음이 1도 없었다.
EDITOR 방제일
어쩌면 마음속에서 평생 골프를 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른다. 사람도 상황도 변한다. 최근 주변에 점점 더 ‘골린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주변인들이 골프를 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골프가 이제 대중 스포츠가 되긴 됐구나란 생각이 든다. 후회도 함께 밀려온다. 그때 골프를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 말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누군가 내게 골프를 치냐고 물으면 위축되는 것을 최근 발견한다. 이는 골프를 친다, 안 친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해병대가 수영을 못 해’란 조롱과 같이 골프 에디터가 골프를 안 친다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제 드디어 골프를 시작해야 할 때인가.
EDTIOR & PHOTO 방제일
이번 첫 도전기는 지난해 10월 이뤄진 ‘카이도배 골프대회’가 큰 영향을 미쳤다. 기왕 일본에 간 김에 바로 필드에서 소위 머리를 올릴 생각이었다. (이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은 이제 지양해야 하는 표현이지만, 너무나 관용적으로 사용되기에 에디터도 여기서는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골프를 해보지 않았지만 나름 자신은 있었다.
죽어있는 공보다 살아있는 야구공을 많이 쳐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에디터에게 박준영 편집장은 그래도 스크린골프는 한번 쳐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라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 말에 동의하곤 박 편집장과 함께 근처 스크린골프장으로 향했다. 에디터가 왼손잡이였기에 박준영 편집장은 정성스럽게 왼손 타석이 있는 스크린골프장을 물색했고, 스크린골프장으로 향했다.
18홀을 뚝딱거리다 내린 결론
뚝딱거린다. 그 말 딱 어울렸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왼손잡이 골프채를 가지고 18홀을 뚝딱거렸다. 내 맘대로 가지 않는 골프공에 분노하기도 했고,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대체 왜 공이 똑바르게 가지 않는 것일까. 아니, 똑바르게 가는 것은 차치하고 공이 뜨질 않았다. 대체 이 공을 어떻게 몇 백야드나 날리는 것인가.
순간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치욕스럽고 지옥 같던 18홀을 치고 나서 에디터 깨달았다. 이대로 필드에 나가는 건 골프에 대한 모독이다. 그래서 지난 10월 치러진 카이도 배에서 나는 골프의 기본과 골퍼들의 자세를 관찰하고자 친히 캐디 역할에 자원하게 됐다.
캐디로 나간 첫 필드
카이도배 일본 아마추어 골프 대회는 4박 5일간의 고단한 여정이었다. 첫날은 골프장까지의 이동에 모든 시간이 소요됐다. 둘째 날 새벽부터 본격적인 골프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27홀 연습 라운드가 시작됐다. 새벽부터 대회에 참가한 인원들은 모두 대부분 첫 라운드 준비에 분주했다.
에디터와 박 편집장도 새벽에 부랴부랴 일어나서 골프 백을 챙기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정해진 파트너가 없었기에 당일 아침 2인 플레이를 하는 이들과 함께 라운드를 하게 됐다.
노 캐디로 진행된 라운드였기에 예상치 못하게 캐디 역할을 자처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박 편집장과 두 여성 골퍼의 캐디를 하게 됐다. 캐디를 하면서 처음으로 골프 클럽과 골프 코스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글로는 수없이 써왔던 것들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내가 마주한 가장 큰 난간은 클럽 헤드에 맞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공의 낙구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저 작은 공을 어떻게 다들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믿기질 않았다. 그작은 골프의 궤적과 낙구 지점을 눈으로 좇았지만 제대로 본 공보다 보지 못한 공들이 훨씬 많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첫날 18홀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공들이 오후 들어 조금씩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캐디 아닌 캐디로 나간 첫 필드는 예상보다 어렵고, 즐거운 것이었다. 카트를 모는 것도 즐거웠고 골퍼들의 샷들을 바로 앞에서 구경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골프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골퍼들의 ‘굿 샷’이 얼마나 많은 스윙 끝에 나온 것인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다
이틀간 총 54홀 동안 캐디 역할을 했다. 캐디 교육을 받은 정식 캐디도 아니었고, 골프에 정통한 골퍼도 아니었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무지에 대해 배운 시간이었다. 캐디를 마치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단 하나의 문장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You Know Nothing”, HBO가 제작한 미국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사다. 이 대사처럼 나는 그동안 ‘골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여정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해서 골프 생각이 났다. 남들만큼 골프를 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라도 젊을 때 골프를 배우라는 조언이 뼛속에 박히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는 골프에 잘 치고 싶다는 열망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음 번에 골프를 칠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처럼 드라이빙 캐디가 아니라 나도 필드에서 멋진 스윙을 하면서 굿 샷을 외치고 싶었다. 아, 이렇게 또 하나의 ‘골린이’가 탄생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