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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코스, 메이저에서만 2승!' 장타자 전성시대에 제동 걸고 나선 홍지원

최근 KLPGA는 장타자 전성시대의 서막을 보는 듯했다. 특히 방신실, 김민별, 황유민 트로이카를 위시한 루키들이 그야말로 거포를 앞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월 DB그룹 제37회 한국여자오픈은 그러한 최근의 흐름과는 확연히 다른 과정과 결과를 보여줬다.

 

 

정교함의 대명사, 홍지원

“저는 장타가 무기인 선수는 아니지만, 대신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더 자신 있게 플레이하려고 해요. 남들보다 뒤에서 (세컨샷을) 쳐도 더 잘 붙일 수 있다고 믿고 칩니다.”

 

지난 6월, 악명 높은 레인보우힐스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에서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115위(224.01야드) 홍지원이 우승을 차지했다. 페어웨이 안착률에서는 88%로 1위를 달리는 ‘정교한 골퍼’의 대명사다.

 

통상 타구의 각도가 1° 틀어지면 낙하지점 100m에서는 7m가 틀어진다고 한다. 200m면 14m가 틀어진다. 좁은 코스라면 ‘터지기’ 딱 좋은 탄착군이 형성된다. 골프는 그렇다. 샷이 터지면 멘탈도 터지는 법이다. 정교함을 앞세운 골퍼들이 무서운 이유다. 화려한 파5 투온은 못 해도 ‘따박따박’ 코스를 공략하기 때문이다.

 

 

가혹한 무지개 언덕

2021년부터 3년째 한국여자오픈이 열리는 레인보우힐스CC(충북 음성)가 바로 이런 골퍼의 정확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선수는 물론이고 갤러리들도 죽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높은 오르막 홀이 많아 체력 소모도 크다.

 

이 코스는 시인이기도 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코스는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인보우힐스의 페어웨이는 좁고, 러프는 길다.

 

해설진들은 “시리어스 골퍼라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알고 싶다면 꼭 이곳에서 라운드해보기를 권한다”고 코스를 소개했다. 물론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그래서 이 대회가 끝난 다음 날인 월요일은 부킹 경쟁이 대단하다.

 

올해도 ‘무지개 언덕’의 시험대는 가혹했다. 1라운드에서 2명이, 2라운드에는 무려 12명이나 경기를 포기했다. 디펜딩 챔피언 임희정도 그중 하나였다. 2라운드 11개 홀 경기를 마치고 기권은 선언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최근 발목이 좋지 않았는데 경사가 심한 코스를 오르내리다가 통증이 심해졌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정도 어려워야 불타오르지

“변수가 많은 만큼 남들도 다 어렵다고 생각해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했어요.”

 

홍지원은 자신의 ‘무기’가 뭔지 정확히 알고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챔피언조 김민별, 마다솜, 홍지원 중 장타자라고 할 수 있는 건 김민별 뿐이었다.

 

4라운드의 전반 9홀이 다가올 무렵 김민별과 마다솜이 각축을 벌였다. 김민별의 호쾌함과 마다솜의 정교함이 어우러지며 멋진 승부를 펼쳐나갔다. 후반이 되자 본격적으로 스코어가 엎치락뒤치락하기 시작했다. 홍지원도 같은 조에서 선전했지만, 솔직히 여기까지 경기를 본다면 우승은 김민별과 마다솜이 경쟁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홍지원은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3개, 더블보기 1개로 1타를 줄여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보란 듯이 공동선두를 만들면서 경기를 마쳤다.

 

롱아이언? 오히려 좋아!

“(티샷이 왼쪽 러프로 떨어졌는데) 그린 앞의 언덕을 공략해서 바운스로 올라가야 했고, 어차피 저는 롱아이언을 잡으니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어요. (롱아이언을 잘 치는 비결이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남들보다 롱아이언을 많이 쳐서 그런 것 아닐까요(웃음)?”

 

그리고 18번 홀에서 벌어진 2차 연장전. 147m를 남긴 러프에서의 세컨샷에서 롱아이언을 잡은 홍지원은 그린 앞 언덕을 공략했다. 롱아이언이었기에 타구는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언덕 위로 튀며 핀 1m 옆에 붙었다. 가볍게 버디로 연결한 홍지원의 우승이었다.

 

티샷을 가장 멀리 보낸 김민별도 홀 우측 5m 거리에 볼을 세웠지만, 쉽지 않은 라인에 타수를 지켜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롱아이언 실력보다 돋보인 건 ‘오히려 좋아’의 자세였고, 멘탈이었다.

 

메이저만 2승, 엘리트 아니라도 괜찮아

2022년 8월 메이저 대회인 한화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맛본 뒤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달성한 2번째 메이저 우승이다. 지난 우승도 어렵기로 유명한 메이저 대회인 ‘한화 클래식’에서 일군 성과였다.

 

홍지원은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경험하지 못했다. SBS ‘색다른 골프 방송’ 해설위원으로 참여한 김송연 프로도 “아마추어 시절에는 모든 선수가 ‘국대’가 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국가대표 타이틀은 선수들에게 압박감이 되는 이름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자부심을 얻는 엘리트 코스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여자오픈 챔피언십은 그간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거의 쓸어갔다. 최근 30회 대회 동안 국가대표 또는 상비군이 아닌 선수가 우승한 건 1994년 김순미, 2017년 김지현 이후 올해 홍지원이 처음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꿈이 아니다

홍지원은 이 대회 우승(우승상금 3억 원)으로 2023시즌 상금순위 4위에 올랐다. 3위 박현경과는 약 3천만 원 차이(6월 중순 기준)고, 5위인 박민지보다 높은 순위다.

 

“예상치 못하게 메이저 2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는데, 남은 메이저 3개에서 우승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예상치 못했다’던 우승치고는 포부가 대범하다. 홍지원은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우승을 이끈 원동력은 ‘긍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포부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홍지원의 메이저 2승은 많은 선수에게도 울림이 있는 결과가 될 것 같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어도, 장타자라 아니라도, 팬들을 뜨겁게 만드는 경기를 할 수 있고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