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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Welcome Back ‘삐죽이’에서 ‘큐티풀’로 돌아온 박현경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스포츠에서 ‘인기’라는 건 알고 보면 양날의 검이다. 잘할 때는 더 띄워지지만, 부진하면 더 고꾸라지는 게 인기다. 골프 씬에서는 그게 꽤나 가혹한 편이다. 특히 더 가혹할 때가 언제냐면 잘했고, 인기도 많고,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는데 성적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다. 2년 5개월 동안 우승 소식이 없던 박현경이 ‘큐티풀’에서 ‘삐죽이’가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2년 반’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기회는 많이 왔다. 그 기회를 못 잡아
좌절한 시간이 많았다. 다만 ‘실패’보다는
성장의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우승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박현경은 현 KLPGA투어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팬덤을 보유한 스타지만, 에디터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선수다. 박현경 덕분에 골프 중계에 입문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현경이 우승한 다음 달에는 타이거 우즈가 우승해도 박현경을 커버로 쓰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골프가이드의 편집장을 맡은 이래 박현경은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박현경이 2년 5개월 만에 ‘SK네트웍스.서경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건(?)은 아마 쉽게 잊히지 않을 ‘2023년 주요 이슈’로 남을 것 같다.

 

 

부진하지 않아서 더 간절했던 우승
박현경은 2021년 5월 KLPGA 챔피언십에서 통산 3승을 거둔 이래, 무려 9차례나 2위에 그쳤다. 올 시즌에도 3번이나 우승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켰다. 사실 박현경이 그간 우승이 없을 뿐이었지 부진했던 건 아니다. 9번의 준우승이 그렇고, 53개 대회 연속 컷 통과 기록이 그렇다.

 

특히 연속 컷 통과 기록이 끊긴 것에 대해 비가 많이 내린 5월 5일 ‘교촌 1991 레이디스 오픈’이 기존 3라운드에서 2라운드로 조기 종료되면서 KLPGA가 다소 ‘기계적’인 규정 적용으로 억울하게 끊어진 게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어쨌든 박현경은 올 시즌 32개 대회 중 30개에 참가하면서 27회 컷 통과를 했다. Top10 진입은 11회 했고, 상금 랭킹 5위, 대상 포인트 4위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27개 대회에 참가해 단 한 번도 컷 오프 당하지 않았다. 2021년에도 28개 대회에 참가해 1회 컷 탈락했고, 상금과 대상 포인트 4위로 시즌을 마감했었다. 그 유명한 평균 퍼트 1위 시즌이기도 한데, 컷 탈락이 1개에 불과했기에 순도가 상당히 높은 기록이었다.

 


큐티풀이 어느새 삐죽이로
꾸준히 활약했음에도 우승이 없자 ‘큐티풀’로 인기를 구가하던 박현경에게 별명이 하나 붙었다. ‘삐죽이’다. 전엔 ‘뾰로통하다’고 표현되던 경기 중의 시그니처(?) 표정이 최근에는 ‘삐죽거리고 있다’는 지적으로 바뀌었었다.

 

안티 없던 그에게도 안티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이번의 우승이 1승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건 그래서다. 실제로 우승 후 박현경을 보는 시선은 다시 따뜻해졌다. ‘삐죽이’라며 이죽거리던 이들도 그날만은 입을 닫았다. 그렇게 다시 ‘큐티풀’이 되어돌아온 박현경이지만, 더이상 박현경을 그렇게만 소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반기에는 조급해하며 ‘빨리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반기 들어 생각을 바꿨다. ‘몇 년이 걸리든 끝까지, 될 때까지 해보자’는 거였다.”


그의 고민과 일상은 늘 골프를 향해 있었다. 그를 마치 아이돌처럼 소비한 건 우리다.

 


본업 집중 모멘텀, 프로의 얼굴
이 우승은 ‘초년생’에서 어느새 제법 베테랑의 면모가 비치기 시작하는 시절을 보내던 박현경의 커리어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 같다. 우승 없이 이번 시즌을 마쳤더라면 박현경의 올겨울이 얼마나 혹독했을지, 2024년의 개막이 얼마나 부담이었을지 헤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의 러브콜을 숱하게 받고,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선수이기에 조금 더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 다소 외적인 요소들이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는 방해가 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승은 더 멀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이렇게 우승을 하고 나면 다시 본업에 집중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된다.


박현경이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건 물론 그의 외모도 한몫했지만, 유망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2년 5개월 만의 우승 후 인터뷰에서 그간의 심경에 대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주변에는 ‘괜찮다’, ‘내 시간이 올 거다’, ‘간절할 때는 지났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속내는 정말 간절했다고 밝히는 그의 얼굴은 큐티풀 같은 게 아니라 사뭇 늠름한 투어프로의 얼굴이었다.

 


‘안주했고, 후회했다’
박현경은 올 초 처음으로 전문 캐디와 대회에 참가했다. 근래 보기 드물게 환한 표정이라 보기 좋았고, 경기력도 조금 더 차분해진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러나 곧 박현경의 백은 다시 부친인 박세수 씨가 멨다. 이 스토리에 대해 박현경은 “스스로 독립해보겠다고 먼저 말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2주 휴식기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직 아버지께 배울 게 남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 부탁드렸다. 솔직히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웃음), 무엇보다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10번째 우승 도전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연장전에서 패배를 안긴 이소영과 맞붙게 된 것에 대해 박현경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엔 ‘연장까지 온 것만도 잘했다’고 안주했고, 정말 크게 후회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장갑 벗을 때까지 모른다’는 얘기다. 다른 선수들 성적을 모르고 있기도 했지만, 아버지 말씀을 떠올렸고 안주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박현경은 우승 경기 후 방송사 인터뷰 말미에 “아빠 고마워요”라는 말을 붙였다. 일부러 마지막까지 아껴둔 모습이었다. 그 짧은 코멘트는, 박현경의 히스토리를 아는 팬이라면 더욱, 애틋하게 들렸다.

 

 

‘안주’와 싸워온 2년 5개월
박현경은 2년 5개월 내내 ‘안주’와 싸웠다. 그간 박현경은 여러 매체에 출연해 장타자와 매칭될 때면 “나는 나만의 장점이 있다”고 강변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한 훈련에는 꾸준히 매달리고 있다. 그래선지 올 시즌 박현경의 체형도 사뭇 달라 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집착해온 건 안주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은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런데 ‘안주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저 일상을 바쁘게 보내고, 루틴을 해낸다는 것만으로 안주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박현경은 같은 아카데미 소속 후배인 김주형 프로가 인터뷰에서 “다음 홀도 있고, 다음 라운드도 있고, 다음 대회도 있다”고 말해서 그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말했다.

 

혹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안주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긍정이 아니라, ‘더 할 수 있다’는 긍정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기록상으로는 그저 1승을 추가한 것이지만, 박현경의 내년이 더 기대된다. 올 시즌 달라진 그의 피지컬만큼이나 그의 마음도 탄탄해졌다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PHOTO KLP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