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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팀’ 된 크리에이츠-이븐롤..‘게린 라이프’에게도 일단은 ‘그린 라이트’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지난해 4월, 국내에서는 QED의 제조사로 잘 알려진 크리에이츠가 미국 이븐롤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초정밀 골프 론치모니터 ‘유니코’로 북미 시장 톱3 브랜드가 된 회사가 크리에이츠다.

 

그간 공격적인 투자 면에서 늘 아쉬움을 느껴온 이븐롤 브랜드와의 시너지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진행된 국내 첫 공식 행사에서 이븐롤 수석 디자이너 게린 라이프와 이븐롤 아태지역 대표이자 크리에이츠 신사업본부 이사인 백성영 대표를 만났다.

 

 

크리에이츠만의 기술 2가지
크리에이츠는 딤플옵틱스, 클럽옵틱스 등 특허 등록된 고도의 이미지처리 기술과 알고리즘 바탕의 정밀한 측정 성능으로 까다로운 해외 소비자들을 먼저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딤플옵틱스는 인위적인 마킹 없이 ‘골프공의 딤플만을 이용해 회전을 측정’하는 기술이며, 클럽옵틱스는 클럽의 궤적과 임팩트를 판독한다. 둘 다 크리에이츠의 독자적인 고유 기술이다.


이미 4년여 전부터 북미 시장에 진출했던 크리에이츠는 초정밀 골프 론치모니터 시장에서 ‘트랙맨’, ‘포어사이트스포츠’와 함께 북미 톱3 브랜드가 됐으며,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수개월에 걸친 시장 진입 준비 과정을 마무리하고 일본 법인설립 준비를 마쳤다. 일본은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골프 인구가 많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에이츠는 향후 동남아, 유럽, 중동 등으로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QED의 제조사로 더 잘 알려진 크리에이츠가 지난해 12월 5일(화) 판교 백야드(테크원빌딩 지하 1층)에서 미디어데이를 가졌다. 지난 방한 이후 1년이 채 안 돼 다시 한국을 방문한 게린 라이프는 이미 설레는 얼굴로 참가자들을 만나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븐롤 퍼터를 만든 게린 라이프는 스카티 카메론, 베티나르디와 함께 현재 ‘세계 3대 퍼터 거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카티 카메론의 업적과 그의 제품을 존경(respect)한다”는 전제하에 “이븐롤이 스카티 카메론보다 확실히 앞서 있는 1가지를 꼽자면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퍼터는 유독 ‘감성의 영역’에 있는 클럽으로 여겨지지만, 어쩌면 가장 정밀한 기술이 녹아있어야 하는 클럽이 바로 퍼터다. 골프 클럽 중 가장 많은 특허가 출원돼 있는 분야도 퍼터다.

 

 

골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가장 제한된 동작으로 볼을 타격하는 퍼트에서 아주 약간의 미스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븐롤의 스윗 페이스 기술은 단순히 ‘미스 퍼트에서도 볼을 목표 지점까지 굴려준다’는 의미 이상을 가진다.

 

골퍼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퍼트도 1타’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는 골퍼들에게는 손맛이고 타감이고 뭐고 간에 더없이 필요한 ‘기술’이 아닌가.

 

당시 그는 “(스카티 카메론은) 타이틀리스트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 투어 밴을 운용하고, 오랫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어 프로 지원프로그램에 들였다”며 오로지 퍼터만을 만드는 이븐롤은 ‘다른 필드’에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말했었다.

 

솔직히 당시 현장에 참석했던 에디터에게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자본의 차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븐롤이라는 브랜드와 사업가적 기질보다는 퍼터를 깎는 장인의 풍모가 더 짙은 게린 라이프라는 인물에 관심이 갔다.


게린 라이프는 “내가 더 노력해보겠다”며 웃음을 보였지만, 그의 말대로 퍼터만을 제작하는 이븐롤이 고유의 기술력과 히스토리를 골퍼들에게 각인시키기에 막대한 자본력의 부재는 뼈 아파 보였다.

 

 

이븐롤, 마중물을 만나다
낭보가 들려온 건 지난해 4월이다. 국내에서는 QED의 제조사로도 알려졌고, 일찌감치 북미시장에 진출해 브랜드 ‘유니코’로 선전 중인 크리에이츠가 미국 이븐롤의 지분 70%를 1,520만 달러에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크리에이츠는 초고속 이미지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골프 론치 모니터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자체 설계·제작·판매하는 테크기업이다.


크리에이츠 신사업본부 이사·이븐롤 아태지역 대표인 백성영 대표는 이븐롤을 선택한 것에 대해 “크리에이츠가 글로벌 컴퍼니로서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븐롤을 선택한 것은 ‘기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내에서 ‘기술력’을 가진 브랜드로 각인된 이븐롤이 테크기업인 크리에이츠와 딱 맞아떨어지는 대상이었다고. 더불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븐롤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자사의 퍼트 부문 시뮬레이터 성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크리에이츠만이 아니라 이븐롤 역시 막강한 지원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TGL리그 출범 겨냥한 크리에이츠의 ‘빌드업’
백 대표는 이어 타이거 우즈를 중심으로 출범하는 TGL리그를 언급했다.

“크리에이츠는 글로벌 컴퍼니로서 TGL 출범에 앞서 북미시장에 진출했고, 현재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TGL이 인기를 끌면 북미 시장에서 과거 홈시어터가 ‘주요 가전’으로 자리매김하며 ‘붐업’됐듯 유니코가 가전의 일부로 크게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TGL 경기에는 ‘풀스윙’이라는 시스템이 사용된다. 그러나 백 대표는 “TGL로 인해 스크린골프가 활성화되면 일반 매장과 가정용으로는 크리에이츠의 제품이 더 넓게 보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TGL리그가 인기를 끌면 ‘홈 골프’의 대중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미 기반을 닦은 유니코의 제품과 서비스가 ‘가전’의 하나로 자리 잡아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게 크리에이츠의 노림수였다는 얘기다.


자본력 가세한 이븐롤, 날개 펼칠까
이븐롤 인수에 대해 백 대표는 “게린 라이프의 기술과 미국 내 인지도가 글로벌 컴퍼니 크리에이츠의 자본과 만나 시너지를 누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시너지’라는 단어가 통상적으로 자주 쓰는 단어로만 들리지 않았던 건 이 대목에서 문득 스카티 카메론과 타이틀리스트의 독점 계약 스토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카티 카메론은 1991년 레이 쿡에 입사한 이래 여러 골프클럽 제조사에 근무하며 퍼터를 디자인했고, 비즈니스 능력을 키웠다. 1992년 중고 장비를 마련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 그는 운 좋게 PGA 프로에게 퍼터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이듬해인 1993년, 독일의 프로 골퍼 베른하르트 랑거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스카티 카메론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94년, 퍼터 시장에 진입하고 싶었던 타이틀리스트는 스카티 카메론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이틀리스트 브랜드를 함께 사용해 시너지를 만들기로 했다. 막대한 투자금이 집행됐고, 타이거 우즈가 스카티 카메론을 들고 첫 우승을 한 이후 수차례 우승하며 스카티 카메론은 골퍼들의 ‘워너비’가 됐다. 현재 투어에서 스카티 카메론을 사용하는 선수는 과반수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스카티 카메론이 현재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물론 제품의 품질과 성능, 투어에서의 검증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막대한 규모의 투어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이번 크리에이츠와 이븐롤의 합병은 타이틀리스트와 스카티 카메론이 지난 30년간 누렸던 영광을 재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리아 체제’ 이븐롤, 라인업 확장할 것
앞서 소개했듯 게린 라이프는 지난해에도 한국 방문 당시 타사와의 경쟁에 있어 투어 스폰서십에 투자할 예산 문제를 스스로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관건은 투어 프로그램”이라며 “투어에서 누가 이븐롤을 사용하는가가 중요한데, (크리에이츠와의 합병으로) 스폰서십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백 이사는 이 부분에 대해 “공격적이고 전문적인 투어 지원 프로그램을 깊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빠르면 2024년 중에 달라진 투어 지원프로그램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스카티 카메론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공급 이슈가 지속 중이다. 인기는 여전하고, 리테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했지만, 단시간에 폭증한 수요를 희소성이라는 명분만으로 온전히 흡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다른 제조사에는 기회가 된 모양새다. 이 ‘타이밍’을 크리에이츠가 제대로 파고들지 지켜볼 일이다.


백 이사는 이에 대해 “엔트리부터 프리미엄까지 라인업을 확장할 예정”이라며 “다양한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고, ‘기술을 바탕으로 한 패션’을 지향하는 만큼 시장의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확 달라진 타구감, 이븐롤 맞아?
한편, 체험에 이어 본 행사는 게린 라이프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됐다. 2023년을 건너뛴 이븐롤의 2024년도 새로운 라인업은 ‘더뉴 2024 네오 클래식’이다. 기본형 모델인 ER2(블레이드), ER5(말렛)에 ER1.2, ER2.2, ER8 등 3가지가 공개되는데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코닉 타입으로 다시 한번 시장의 니즈를 저격할 것으로 보인다.

 

커스텀 가능한 호젤과 텅스텐 무게추를 장착한 EV시리즈는 한국에서만 발매될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이븐롤’ 하면 떠오르는 말렛 형태인 ER12 Gimme와 ZERO도 극강의 MOI와 인위적인 포워드프레스가 필요 없는 페이스밸런스 그대로 유지한다.


가장 큰 변화는 뭐니 뭐니해도 ‘6061 폴리머 충진 알루미늄 페이스 인서트’다. ‘타구감’ 이슈를 해결하면서도 이븐롤 퍼터 고유의 ‘빗맞아도 똑바로’ 기술은 고스란히 유지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015년 퍼트 장비로 미스 퍼트 상황에도 탄착군이 모이는 유명한 영상 ‘오리지널 롤 테스트’를 신제품을 사용해 똑같이 재현했다.


특히 타감에 대해 게린 라이프는 “페이스의 소재도 중요하지만, 페이스 뒷면을 채운 폴리머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지난 방한 등을 통해 타감에 대한 고민을 꽤 한 모습이었다. 새로운 시리즈 소개 영상의 첫 장면이 타감을 언급하는 내용이었을 정도다.

 


뜨거웠던 Q&A 시간
한편, 이븐롤 퍼터의 샤프트는 33, 34, 35인치로 길이가 길어져도 D7의 스윙웨이트를 일정하게 보여준다. 게린 라이프에 따르면 D7이 퍼트에 가장 적절한 수치(투어 스탠다드)이자 안정적이고 편안한 퍼터 밸런스다. 타사의 경우 최대 16개까지 스윙웨이트가 나타나는데 라이프는 “그들(타사)도 D7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Q&A 시간도 여타 행사와 달리 뜨거웠다. 진행을 맡은 홍재경 아나운서는 “혹시 몰라 예비 질문을 꽤 많이 준비했는데, 기우였다”며 놀라워했을 정도로 미디어의 관심이 뜨거웠다.

 

홍 아나운서는 사실 이미 소문난 이븐롤 마니아다. 그는 이븐롤의 마니아가 된 계기에 대해 “2021년 이븐롤 퍼터를 들고 당시 클럽72 하늘 코스에서 라운드를 했는데 전반에만 4개의 버디로 라·베를 기록했다. 각각 롱 퍼트, 숏 퍼트, 미드 퍼트 그리고 프린지에서의 퍼트였다”며 “이후 늘 이븐롤을 자랑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븐롤의 영역 지켜준 크리에이츠에 감사”
이븐롤을 취재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 정말 수많은 기술을 논하는 자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실 필기체로 변형된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소 발랄해진 로고가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확실히 들었다.


이에 크리에이츠 인수가 게린 라이프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과거 디자이너로서는 3대 거장에 들 만한 장인이면서도 특허권 문제로 이득을 보지 못했거나, 이익률만을 최우선으로 한 투자자들에게 밀려난 ‘RIFE’ 시절의 좌절을 겪었던 그이기에 이번 크리에이츠의 인수가 그의 말년에 어떤 계기가 될지가 골프 장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도 관심사가 됐다.


게린 라이프는 “오늘 행사만 봐도 달라지지 않았나?”라며 웃어 보였다. 판교 백야드는 최근 다수의 제조사 관련 행사를 도맡고 있을 만한 공간이라 더 이해가 갔다. 라이프는 이어 “크리에이츠가 이븐롤의 역할과 영역을 존중해주는 점에 감사한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단순히 자본력이 더해져 기쁘고,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면, 개인적으로는 다소 우려가 들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크리에이츠가 주관하는 이븐롤의 신제품 쇼케이스의 성격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이븐롤의 새로운 행보가 기대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크리에이츠와 이븐롤의 동행이 어떤 분위기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지점이기도 했다. 에디터가 직접 이들의 곁에서 염탐(?)한 결과 크리에이츠와 하나가 된 게린 라이프에겐 일단 ‘그린 라이트’가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