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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를 위한 징계였을까? - 윤이나를 위한 변명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2024년의 시작과 함께 윤이나의 징계가 감경됐다. 지난 12월 이사회에서 결정됐어야 했지만, 1월까지 질질 끌었다. 이유는 하나다. 여론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것이다. 속된 말로 간을 좀 본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을까. 바로 감경해버렸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EDITOR 방제일

 

역시는 역시다.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 알고 있었지만, 너무 예상대로 흘러가니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협회의, 협회에 의한, 협회를 위한 징계
윤이나는 사실 이래저래 어른들의 사정에 따른 희생양이다. 오구 플레이로 논란이 있었을 당시에도 뒷말이 많았다. 갑작스러운 논란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졸속으로 징계를 해버렸다. 무작정 3년을 때리고 나니 좀 길다 싶었다. 아차 싶었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추후 감경하면 될 일이니까. 처음부터 계획적이었을지 모른다. 음모론을 좀 펼치자면, 마치 법정 드라마의 형량 거래처럼, 이 모든 것은 애당초 정해져 있었던 일이다. “딱 1년 반만 쉬고 2024시즌에 훌훌 털고 복귀하자.” 어쩐지 누군가 말했을 법한, 진부한 레파토리다. 물론 에디터의 뇌피셜이고, 시답잖은 음모론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결국 잊는다
2022년 8월, 그때로 돌아가 보자. 윤이나가 7월께 우승했다. ‘반짝반짝 빛이 났’던 윤이나는 그야말로 KLPGA 투어의 판도를 뒤흔들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뒤흔들었다. 골프가이드는 곧바로 그를 8월호 표지로 선정하며 ‘차기 KLPGA 투어의 미래’로 강력히 확신했다. 그때였다. 오구 플레이 이슈가 터졌다.

 

윤이 나던 윤이나는 한순간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소위 나락으로 가버린 것이다.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협회는 서둘러 ‘윤이나 지우기’에 나섰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라도 된 듯 징계가 결정됐다. 3년이라는 징계가. 그렇게 윤이나는 언론과 KLPGA 투어에서 사라졌다.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팬들에게는 전도유망한 한 골퍼의 미래를 막은 것이 아닌가 하는 묘한 죄책감만 남았다. 그 죄책감은 결국 ‘이만하면 됐지’라는 여론으로 변해 징계 수위가 낮아지는 데 일조했다. 아니, 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일조한 수준이 아니라 크게 작용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억은 결국 희미해지고, 시간은 모든 걸 지워버리는 명약이니까.

 

징계는 쉽고, 용서는 어려워
시간은 ‘명약’이지만, 그 무엇도 치유하지는 못한다. 사실 윤이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떠오른 다른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국남자골프협회에서 진행했던 김비오에 대한 징계다. 김비오와 윤이나의 졸속 징계와 감경, 그리고 복귀 모든 과정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보인다. 마치 한 번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딱히 무슨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요지나 목적, 그런 건 없다. 거창한 음모론을 펼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글은 전도유망했던 한 소녀 골퍼의 앞길을 막은 건 아닌가 했던 한 에디터의 소회이자 푸념이다. 그때 더 강력하게 윤이나의 징계는 부당하다고 주장했어야 했던 아닌가 하는 일말의 죄책감의 발로다. 어쩌면 협회를 향한 분노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누군가는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지 에디터의 역할이자 비애다. 그래야 또다시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자체보다 무서운 건 인류가 그 수용소의 존재를 잊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국 에디터도 골프 팬도, 우리 모두 잊지 못하게 됐다. 이 사건은 이제 낙인이 되어 윤이나라는 이름을 영원히 따라다니게 됐다. 차라리 그가 3년의 징계를 다 채웠다면, 낙인은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찍히더라도 그의 참회와 반성의 진정성은 조금 더 잘 통했을 것이다. 협회는 유망한 선수의 미래를 고려했겠지만, 도리어 더 깊은 낙인을 찍은 꼴이다.

 

그리고 윤이나에게 기회를 박탈한 꼴이기도 하다. 골프계에 제대로 용서를 구할 기회 말이다. 하다못해 6개월, 가능하다면 1년만 더 감내했다면 어땠을까. 협회는 감경의 명분을 얻었을 것이고, 팬들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응원을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반대 목소리도 지금만큼 거세지 않았을 것이다.

 

윤이나가 져야 할 마음의 짐도 그만큼은 덜어졌을 것이다. 그럼 모두가 원하는 바인 ‘전도유망한 선수의 힘찬 발걸음’은 이어나가기 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거기서 오는 아쉬움이 오래 남을 것 같다.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갈라치기’가 심각한 화두인 시대다. 윤이나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심은 이미 맹목적이고 분별없는 지지로 치부되는 모습이다. 윤이나는 실력 있고 전도유망하다는 이유로 특혜를 받은 사례가 돼버렸고, 윤이나를 구제해달라는 팬들의 순수한 바람은 변색하고 말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