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대진 기자 | 정부는 내년도 정부예산을 전년 대비 8.3% 증가한 604.4조 원의 슈퍼 예산으로 편성해 국회로 넘겼다. 정부는 “재정적자 20조 원 축소로 건전 재정 회복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실현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55조 6000억 원이 많아 내년도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1천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5년간 빚이 400조 원이나 늘어난다. 내년도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잡혀 있어 선심성 예산이 많이 들어갔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에서 이를 어떻게 조정할지 주목된다.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이종배)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해 조정한다.
정부 확장재정 통한 ‘재정 선순환’ 가능 전망...실현은 미지수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과 ‘2050 탄소중립’ 실현 등 미래 대비를 위해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했다.
이에 따라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적자 재정이 3년째 이어져 내년에는 사상 첫 국가채무 1천조 원 시대가 열린다. 다만 세입 증가 등으로 수입도 늘어 적자 폭은 올해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확장재정으로 경제가 회복되고 세수가 늘어 결과적으로 재정건전성이 개선되는 ‘재정 선순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실현은 미지수다.
3년째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아 적자 누적
2022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604조4천억 원, 총수입은 548조8천억 원이다. 총지출이 55조6천억 원 더 많다.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은 비정상 적자재정은 2020년도 예산부터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965조3천억 원까지 늘어난 국가채무는 내년 1천68조3천억 원까지 오르게 된다.
文정부 들어 예산 50.9% 증가
재정 확대와 이에 따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빠르다. 2017년 400조5000억 원이었던 본예산은 5년 사이 50.9% 증가했다.
본예산 증가율은 2018년 7.1%, 2019년 9.5%, 2020년 9.2%, 2021년 8.5%에 이어 내년에도 8.3%로 고공행진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32.5%)와 박근혜 정부(17.1%)의 임기 내 예산 증가율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가파르다.
국가채무, 50% '마지노선'까지 깨졌다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12조 원 늘어난 1068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가채무비율은 50.2%로, 처음으로 50% 선을 넘어서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6%에서 5년 만에 14.2%포인트가 늘었다. 올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본예산보다 국가채무가 더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50.2%보다도 채무 비중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앞서 2015년 9월 문재인 당시 야당 대표는 2016년 예산안을 놓고 “(GDP대비)국가채무비율이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던 40%가 깨졌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실제 2016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였다.
400조 원 불어난 국가채무…역대 최고
수입보다 지출 증가 속도가 빨라 국가채무도 5년 만에 407조8000억 원이 불어나게 됐다. 증가율은 47.3%에 달한다. 이전까지는 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200조 원 넘게 늘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앞서 노무현 정부(2003~2008년) 143조2000억 원, 이명박 정부(2008~2013년) 180조8000억 원, 박근혜 정부(2013~2017년) 때 170조4000억 원의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역대 정부 국가채무 얼마나 늘었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상승 속도도 역대 정부 중 가장 빠르다. 노무현 정부 7.0%포인트, 이명박 정부 5.8%포인트, 박근혜 정부에서 3.4%포인트 증가했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14.2%포인트가 증가한다. 이전 세 정부를 합친 증가폭(16.2%포인트)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25년엔 국가채무 1408조 원 된다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25년까지 매년 꾸준히 늘어 1408조5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GDP 대비 비율은 58.8%에 이른다. 이마저도 중기 재정지출 계획상 2023년부터는 지출이 연평균 5.5% 증가한다는 가정에서 잡은 예측치다. 지금과 비슷한 속도로 예산이 확대되면 국가채무도 더 늘어날 수 있다.
국가채무·재정수지 전망
반면 재정수입은 연평균 5% 미만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총수입과 총지출을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의 형태가 갈수록 거리가 벌어지는 일본을 덮친 ‘악어의 입’ 그래프와 점차 닮아갈 전망이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 내년에는 55조6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2025년(-72조6000억 원)까지 매년 60조 원 이상의 적자가 날 전망이다.
내년 조세·국민부담률 사상 최고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338조6000억 원으로 예상했다. 올해 2차 추경안에서 제시한 예상치보다 24조3600억 원(7.8%) 높게 잡은 것이다. 수출·민간소비 증가와 기업실적 호조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정부는 국세수입에 세외수입과 기금수입 등을 모두 포함한 재정수입이 548조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내수 활성화로 부가가치세도 추경안 예상치(69조3474억 원)보다 9.7% 늘어난 76조540억 원이 걷힐 거라고 봤다. 또 법인세도 73조7810억 원으로 올해보다 8조2345억 원(12.6%)이 증가하고, 내년 소득세 명목의 세금이 처음으로 105조2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양도소득세, 증권거래세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 안정화로 각각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세부담률 · 국민부담률 추이
국세수입이 늘어난다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는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국민의 부담도 확대된다. 조세부담률은 올해 20.2%에서 내년 20.7%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상 최고치다. 조세부담률이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세ㆍ지방세 조세수입 비율을 뜻한다.
세금에 각종 사회보장기여금까지 더해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도 2021년 27.9%에서 내년 28.6%로 오른다. 역시 사상 최고치다. 이후에도 매년 높아져 2025년에는 29.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문재인 정부가 펼쳤던 확장 재정의 여파가 국민의 세금부담 증가로 돌아온다.
내년 예산 중 복지 분야 예산은 216조여 원으로 전체의 3분의 1 넘어
내년 예산 604조 원 중 복지 분야 예산은 216조7000억 원으로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특히 청년 대책 예산이 23조5000억 원으로 올해(20조2000억 원)보다 16.3%(3조3000억 원) 증가한다.
일자리 예산에는 31조3000억 원이 소요된다. 노인 일자리 중심의 공공 일자리가 105만 개로 확대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보다 3.8% 증가한 27조5000억 원이다.
‘확장재정→경제회복→세수증대→건전성 개선’ 선순환 구축 방침
정부가 이처럼 내년에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미래 대비를 위해 여전히 ‘돈 쓸 곳’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내년에 코로나19 위기를 완전히 종식하고 확고하게 경기를 회복해야 한다. 신(新)양극화에 선제 대응하고 선도국가 도약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런 재정 소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불가피한 정책적 선택으로 확장적 재정 운용 기조를 유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확장재정으로 경제가 회복해 세수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재정건전성이 개선되는 ‘재정 선순환 구조’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확장재정을 통해 조기 경제회복을 이루고 세수를 늘린 것처럼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작년과 올해도 재정 투입을 늘려 성장률을 높이고 분배를 개선해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했으며, 내년에도 경제 회복세에 따라 세수가 늘어 재정수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정부는 강조했다.
2021∼2025년 평균 지출 5.5%↑ 수입 4.7%↑…채무·적자 확대
정부는 내년 예산을 늘려 ‘재정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2021∼2025년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을 5.5%로 제시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8∼9%대의 높은 예산 증가율을 설정해왔으나 2023년부터는 4∼5%대로 예산 증가율을 묶겠다는 것이다.
올해 600조 원대를 처음 찍은 예산 규모가 2023년 634조7천억 원, 2024년 663조2천억 원, 2025년 691조1천억 원으로 완만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정부는 내다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3년부터는 경제회복 추이에 맞춰서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는 과정을 밟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출 증가율이) 단계적으로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수렴해나가도록 중기 재정계획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2021∼2025년 연평균 재정수입 증가율이 4.7%로 재정지출 증가율보다 낮아 국가채무 증가와 적자폭 확대는 불가피하다.
국가채무는 2023년 1천175조4천억 원, 2024년 1천291조5천억 원으로 늘어난 뒤 2025년에는 1천408조5천억 원을 찍게 된다. 국가채무비율도 2025년 58.8%까지 치솟는다.
2025년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72조6천억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9조2천억원에 이른다. GDP 대비 적자비율은 각각 3.0%와 4.6%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영향으로 복지분야 의무지출이 증가하고 내년 새 정부도 들어서는 점을 고려하면 2023년 이후 예산 증가율은 더 늘고 국가채무와 재정수지는 악화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
정부가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하면 슈퍼 예산을 편성한 데 대해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기회복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내년까지 8%대 지출 증가율을 가져가는 것은 증가율을 하향 조정하는 해외와 비교해봤을 때 과도하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재정정책의 거시경제 확대 효과가 작기에 재정을 투입한 만큼 경기가 부양될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견해”라면서 “이번 정부가 지출 증가율을 마지막 해까지 8%대로 설정하고 내년 들어설 차기 정부부터는 5%대로 낮추자고 하는 것은 재정 운용의 책임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예산 규모를 더 늘려 적극적으로 ‘재정 선순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여러 상황을 감안하며 내년 예산이 적극적인 확장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적자 규모는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적어 상대적으로 재정도 건전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 피해 정도와 산업 전환, 인구구조 변화 등을 고려하면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안도걸 기획재정부 제2 차관,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 고광효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과의 일문일답.
―8~9%대 높은 재정 지출 증가율 고착화되는 것 아닌가.
△안 차관 : 코로나 위기도 완전히 극복해야 하고 경제·사회구조도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재편, 노동 이동을 뒷받침하면서 미래 성장동력도 잡아야만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이에 내년까지는 8.3%를 늘리는 확장 기조로 가게 된 것이다. 2023년 이후에는 경제가 완전히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할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서 2023년에 총지출 증가율을 5%대로 점차 낮춰가기로 했다.
―2023년에 재정 지출 증가율이 5%대로 떨어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최 실장 : 2020~2024년 중기계획을 제출할 때 2023년의 총지출 증가율이 5% 수준이었다. 과도한 수준은 아니다. 경상성장률 수준과 비교해 그 이상은 유지할 수 있도록 총지출 증가율을 설정했다.
―한국은행은 금리 올리는데 확장 재정을 지속하는 것이 적절한가.
△안 차관 : 한은은 경기와 물가 측면, 가계부채, 자산시장의 과열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불균형을 잡기 위해 이번에 금리를 인상한 것 같다. 재정은 재정 나름대로 과제가 있다. 확실하게 경기를 회복시키고 경기 회복 과정에서 격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부분을 빨리 잡아야 한다.
―확장 재정에 맞춰 세수를 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최 실장 : 올해 추경까지 재정 지출이 604조9000억 원이고 내년에 604조4000억 원이라는 점에서 수준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본예산뿐 아니라 추경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년도에 필요한 경제 조기 극복, 백신, 소상공인,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양극화 지원 소요, 지역균형발전 등 필요한 것을 쭉 편성하다 보니 604조4000억 원 수준이 된 것이다.
―내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는데 재정 건전성 기반이 확보된다고 본 이유는.
△최 실장 :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을 얘기할 때 총수입과 총지출, 이에 따른 통합재정수지, 국내총생산(GDP) 비율도 건전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다. 내년에는 통합재정수지가 2.6%대로 상당 폭 떨어지고 2025년까지 계속 3% 이하 수준에서 유지가 된다. 2025년에는 재정준칙을 준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채무가 50% 이상이 됨에도 내년도 재정수지 개선을 통해 재정 건전성 회복 기반을 마련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국세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기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고 정책관 :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불확실성은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경제 회복세가 가시화되고 내년에는 세수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기관별 경제 전망과 전문가 자문 등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편성한 것이다. 또 위기 이후 경제 회복기에는 경상 성장률보다 세수 증가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과거 외환위기에도 1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조세부담률이 2025년까지 매년 20% 이상으로 상승한 이유는.
△고 정책관 : 조세부담률은 단기적으로 올해 강한 경제 회복에 따른 국세수입 증가에 비롯되는 것이다. 내년까지는 조세부담률이 상승하다가 2023년부터는 경제 성장세가 안정화됨에 따라 일정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관련에 내년에 지원하는 예산이 있는지.
△안 차관 : 앞서 추경에서 1조 원을 편성했고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용으로 내년 예산에 1조8000억 원을 반영했다. 추경을 편성할 때 비해 지금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분명히 손실보상 소요는 늘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해서 충분한 예산을 선제적으로 반영해놨다.
―양도소득세 전망치가 줄어들고, 종합부동산세는 기준이 완화됐음에도 30% 가까이 증가한 이유는.
△고 정책관 : 국토교통부와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자산 거래량과 자산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해서 추계를 했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과 공시지가 상승 등을 감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