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을 만들었으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현장에서 기업 대표들이 자신 있게 꺼내는 이 한마디는, 역설적으로 변리사인 내게 가장 위험한 신호로 들린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내가 흘린 땀방울이 순수하다고 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보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내가 정성껏 설계하고, 내 돈을 들여 멋진 집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땅이 남의 소유라면 결국 그 집은 허물어야 한다. 법은 노력의 진정성보다 권리의 귀속을 먼저 본다. 제품 개발도 마찬가지다. 내 기술이라 믿었던 결과물이 타인의 특허 위에 세워졌다면 그 사업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집을 짓기 전 반드시 지적도를 확인하듯, 사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FTO(Freedom To Operate, 자유실시권) 조사다.
많은 기업이 FTO 조사를 수출 기업만의 문제, 혹은 해외 진출을 위한 사전 절차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 역시 지식재산권이라는 지뢰가 촘촘히 매설된 전장이다. 특히 대기업이 이미 강력한 특허망을 구축한 산업군에 진입하려는 중소기업이나, 기존 제품을 개선해 시장에 내놓으려는 스타트업에게 FTO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경쟁사의 특허 침해 경고장 한 장으로 생산 라인이 멈추고, 투자 유치가 무산되며, 어렵게 쌓아온 브랜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례는 적지 않다. 기술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시장의 신뢰다.
더욱이 최근 법제는 기술 보호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조이고 있다. 특허법 제128조 제8항에 따라 고의적 특허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는 최대 5배까지 확대됐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책임이다.
과거에는 “몰랐다”는 해명이 어느 정도 방어 논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전문성을 가진 기업이 필수적인 사전 검토 없이 사업을 강행했다면, 이는 단순 과실이 아니라 침해를 사실상 묵인한 중과실, 나아가 미필적 고의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의 시각 역시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FTO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고의성을 입증하는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사하지 않은 책임이 더 무거운 시대가 된 것이다.
FTO 조사는 단지 위험을 찾아내는 소극적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의 전략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공격 도구가 될 수 있다.
경쟁사의 핵심 특허를 미리 파악하면 이를 우회하는 회피 설계를 통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당 특허의 무효 사유를 찾아내 방어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때로는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경쟁 관계를 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결국 FTO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찾는 작업이 아니다.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가장 정교한 사업 지도이자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이든 국내 시장이든 비즈니스의 원칙은 같다. 남의 권리를 밟고 선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필귀정은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FTO 조사를 병행하는 일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리스크 관리 투자다. 내 집을 짓기 전 지적도를 확인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특허를 살피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진짜 경영자의 자세다.
20년 차 변리사로서 내가 매일 아침 타인의 권리 사이에서 우리 기업의 ‘안전한 길’을 찾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재필 세청아이피엔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