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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티 카메론과 비교? 우린 그저 퍼터를 만든다" 이븐롤의 아버지, 게린 라이프 방한

'Guerin Rife is coming to town'

 

 

“Until I’m No More. I have a passion”

이븐롤 퍼터 수석 디자이너, 게린 라이프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지난달, 칼스베드골프 박상훈 대표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븐롤 퍼터의 수석 디자이너 게린 라이프의 방한 소식. 지난 10월호부터 이븐롤에 주목해온 에디터로서는 가슴이 뛸 정도였다.

 

박 대표는 12월 7일과 8일 사인회와 설명회, 레슨이 준비된다고 했다. 11월 말 예정됐던 해외 골프투어 행사로 가뜩이나 마감까지 일정이 빠듯한 12월이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븐롤 용산 스튜디오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짐을 꺼냈다. 이븐롤을 대대적으로 다뤘던 골프가이드 10월호 3권을 챙기고, 최근 에디터의 장비병을 고쳐준 이븐롤 ER8V를 골프백에서 꺼내 들었다. 내가 쓰는 퍼터를 만든 본인을 만날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있겠나. 커버에 사인이라도 받을 심산이었다.

 

문득 취재하러 온 건지 팬 사인회에 온 건지 헷갈린다 싶던 순간, 내 뒤에 주차장으로 들어온 차에서 풍채 좋은 외국인 한 명이 내린다.

 

‘게린 라이프를 주차장에서 만나는 건가?’라는 설렘에 먼저 아는 척하려다가 ‘아니, 잠깐만. 같이 따라온 누군가일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잠시 뒤 눈이 마주쳤다. 그가 말했다.

 

 

“Hey, You have nice putter!”

초면부터 드립이라니. 아무리 영어라지만 드립의 민족으로서 “예쓰, 예쓰”거리며 가만히 웃고만 있을 순 없었다.

 

“Yeah, You know something! You wanna buy this?”

차에서 이븐롤 퍼터를 서너 개나 꺼내는 걸 보니 이븐롤 마니아인…그만하자. 그렇게 게린 라이프를 만났다. 다가가 골프가이드 10월호를 내밀자 몹시 반가워했다. 그럴 만하지. 잡지에 자기 얼굴과 제품이 도배됐으니까.

 

얼떨결에 마치 일행이라도 된 양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 한국에 언제 왔느냐니 “어젯밤”이란다. 피곤하겠다고 했더니 “그보다는”이라며 안타까운 사연(?)을 쏟아낸다.

 

공항에서 짐을 못 찾고 왔다는 것. 입고 온 옷 한 벌밖에 없는데 날은 또 왜 이렇게 춥냐며 너스레를 떤다. 해외에 나갔다가 캐리어를 찾지 못할 때를 상상하면 당혹감보다 분노가 치밀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과 달리 에디터의 입에서는 또 다른 드립이 나가고 있었다.

 

“Are you sure? In Korea? I don’t believe it. It’s not a Korean style!”

인천 말고 미국 공항에서 안 보냈을 거라는 농담까지 하고 싶었지만, 영어 실력이 짧아 참았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에디터와 안면이 있는 칼드베드골프 장춘섭 회장과 박상훈 대표가 반겨준다.

 

 

게린 라이프가 짐을 잃어버려 옷이 없다는 말에 스탭들이 행사용으로 맞춘 듯한 점퍼를 하나 가져왔다. 사이즈도 딱 맞다. 게린 라이프는 그 빨간색 점퍼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자기 브랜드의 로고인데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애라도 된 듯 자꾸 만지작거리면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 옷 되게 멋지지?”라고 묻고 다녔다. 72세의 퍼터 장인에게 쓸 말은 아니지만, 귀여웠다.

 

 

“스카티 카메론? 우린 그냥 퍼터만 만들잖아.”

참석자들과의 문답 시간에는 아무래도 퍼터 브랜드이니만큼 스카티 카메론이 자주 거론됐다. 미국 특허를 취득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이븐롤 퍼터이기에 그가 스카티 카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관심사였다. 

 

라이프는 “답변에 앞서 스카티 카메론의 업적과 그의 제품을 굉장히 존경한다는 걸 밝힌다”고 운을 뗐다.

 

“스카티 카메론은 타이틀리스트다. 대형 투어 밴을 운용하고, 선수를 위한 막대한 예산을 집행한다. 오랫동안 해왔다. 이븐롤은 오로지 퍼터만을 만드는 회사다. 그들과는 다른 필드라고 보는 편이 맞고,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그런 만큼 내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

그러면서도 이븐롤이 스카티 카메론보다 확실히 앞서 있는 한 가지를 꼽자면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물론 투어 선수들은 스카티 카메론을 많이 쓴다.”

라이프는 이에 대해 프로들은 퍼트에서 “볼을 센터에 맞추는 기술이 이미 완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 레벨에서는 퍼터의 기술력보다 명성과 브랜드이미지, 디자인 등의 심미적인 요인에 따라 제품을 골라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퍼터에 적용된 ‘기술력’이라면 이븐롤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이븐롤 퍼터만의 페이스 그루브를 통해 센터에 맞추지 못했더라도 볼이 똑바로 나아가는 기술력이 현역 투어 프로 레벨의 선수에게는 다소 효능감이 떨어질 수는 있다. 퍼터는 분명 심리적 안정감도 중요하니까.

 

그러나 퍼트 연습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못 하는 아마추어(꼭 내기 골퍼가 아니라도)에게는 얘기가 다르다. 경사를 읽고, 거리를 재고, 힘 조절과 방향성을 확보해야 하는 퍼트에서 ‘내가 본 대로 간다’는 신뢰는 더없이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퍼트 결과’만을 최우선으로 할 때가 전제돼있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인 만큼 오히려 더 자기 마음에 들고, 심리적 안정감과 자기가 원하는 타구감을 주는 퍼터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다만 연습장에서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와이파이로 퍼지던 타구 범위를 줄이고, 클럽에 맞는 거리에 딱딱 떨어뜨리며, 수많은 뒤땅과 타핑을 내면서 어프로치를 연습해갔더니 이번에는 3퍼트, 4퍼트로 속을 뒤집어 놓는 이 골프란 놈을 극복하고자 해본 골퍼라면 게린 라이프의 말을 그냥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골퍼들의 마지막 고민은 역시 퍼트다. 투어 프로들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과나 실패 요인을 꼽을 때 가장 자주 나오는 게 퍼트 얘기다.

 

7자를 그리는 골퍼일수록 퍼트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 지점이다. 초급자 시절에야 당장 드라이버를 멀리 뻥뻥 쳐대는 것에 관심이 가지만, 결국 ‘롱 게임은 적당한 지점 근처에만 떨어뜨리면 된다. 문제는 퍼트’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오딧세이, 스코티 카메론, 그다음은 이븐롤.”

게린 라이프는 3대 퍼터 브랜드로 오딧세이와 스코티 카메론, 이븐롤을 꼽았다. 골프 브랜드로는 “캘러웨이, 타이틀, 핑, 테일러메이드의 4대 메이저 브랜드 다음이 이븐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제로에서 시작해 4년 만에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건 (수치로 나타난) 팩트다. 여전히 우리는 오로지 퍼터만을 만들지만 말이다.”

 

최근 메이저 브랜드에서도 게린 라이프의 ‘라이프 퍼터’에 쓰인 롤 그루브 기술을 채용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그는 “기분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회사들이 자신의 기술을 따라 만든다는 건 그 기술이 그만큼 성공적이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퍼터는 기술 발전이 느린 분야다. 다른 클럽보다 기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실제로 퍼터는 테크놀로지보다는 심미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많다. 한국 시장에 주목하고 있는 라이프는 “(한국 시장은)디자인보다는 기술력에 호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부문에서 한국 골퍼들이 생각보다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얘기는 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디자인에만 끌리기보다는 기술력에 반응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 아마추어 골퍼들의 성향을 보면 100% 맞는 말도 아니다. 커뮤니티를 보면 퍼터 부문에서 유저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타감이 어떤가요?“라는 걸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소위 '버터 타감'이 모든 골퍼의 취향에 맞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골퍼들이 '타감이 부드러운 게 고급'이라고 인식하는 걸 부정해선 안 된다. 이븐롤이 현재 한국 시장에서 타구감에 따른 호불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제품 제로 퍼터는 이 타감 부분도 개선됐다고 하고, 블랙 버전들이 좀 더 타감이 좋다는 리뷰도 종종 보인다. 혹자는 ER3 부터는 그래도 타감이 부드럽다고도 한다. 실제 어떻든 그만큼 한국 골퍼들이 퍼터에 바라는 게 필링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븐롤 퍼터에 대한 커뮤니티 유저의 반응은 이렇다.  다 좋은데 '빈 알루미늄 타감'은 다소 거슬린다거나, 직진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인 퍼트 거리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어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는 등이다. 

 

실제 ER8V를 사용하고 있는 에디터로서도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타구감은 오히려 너무 부드럽거나, 예민하지 않은 중간 어디쯤에 해당해 나름 만족하고 있기도 하다. 거리감 부분은 공감이 간다. 

 

문제는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국 시장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물론 라이프와의 문답 시간에서 엿본 그의 진정성과 열정, 자부심과 자신감을 미루어볼 때 이는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얘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더 취재가 아니라 그의 팬이 되어가는 것 같아 스스로 다소 경계를 하기도 했지만, 퍼터 장인, 천재 소리를 들어온 72세의 퍼터 디자이너의 열정이 조금도 식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선 경계심을 풀었다. 

 

 

지난 골프가이드 10월호에서 에디터는 이 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만하면 된 거 아니냐는 사람이 아닌 미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게린 라이프는 마치 퍼터, 아니 그루브 깎는 노인처럼 미쳐 있었고, 그런 미친 사람이 만든 미친 퍼터가 바로 이븐롤이라고.

실제로 그를 만나보고 몇 달 전 직접 썼던 그 표현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준비한 질문이 여러 개였지만, 뜨거운 질문 공세에 타이밍을 잡지 못하다가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얼른 손을 들었다. 시간이 꽤 소요된 만큼 '딥'한 질문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당신이 언제까지 '신제품'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겠는지 물었다.

 

“더는 할 수 없을 때까지, 죽기 전까지. 열정은 여전하다. 앞으로 20년은 왕성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짐 모리아티의 말투로 “Boring”이라고 핀잔할 뻔한 것도 사실이지만, 20년이라니 안심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