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새해의 연도를 쓰는 게 익숙하다 싶으면 다음 해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사람에게 시간은 갈수록 빨라진다. 그렇게 올해도 어느새 마지막 달을 맞았다.
잡지사의 연말 무드는 보통 11월 말부터 시작된다. 잡지사에서 11월 말은 12월호 준비를 끝내고, ‘신년호’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시기라서 그렇다. 그래서 간혹 한해가 다 끝난 것 같은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이맘때 달에 한 번 정도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예를 들면 미용실 같은 곳을 가면 괜히 ‘내년에 뵙겠네요’라고 인사하는 일이 생긴다.
골프가이드는 매월 마지막 5~6영업일을 남겨두고 인쇄소에 파일을 넘긴다. 따라서 보통 21일 전후로 마감일을 잡는다. 12월호 마감일은 22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올해는 지면에 대회 관련 기사는 최소화하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
22일께에 마감을 하려면 원고는 늦어도 19일 즈음에는 디자인을 맡겨야 하는데, 그렇다고 며칠 상간으로 폭탄을 안길 수도 없으니 원고 작성 시기를 분산시키다 보면, 때론 독자가 읽을 무렵에는 전전달의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리는, 김빠지는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12월호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결산 관련 내용이 좀 들어가 줘야 연말 분위기가 산다. 국내 투어 역시 11월이면 최종전을 치르면서 시즌이 마무리된다. 끝은 늘 되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어서, 이번 시즌 인상 깊은 선수들에 좀 더 관심이 간다. 대신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기사로 다루게 된다. 지난주에 우승한 선수를 다루는 건 일간지와 주간지가 잘 할 것이고, 월간지는 좀 더 깊은 서사를 제공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투어마다 수백 명의 선수가 있지만, 매체를 통해 ‘강조되고 반복되는’ 건 이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투어마다 수백 가지의 서사가 매년 다채롭게 일어난다. 잡지는 남들보다 한 달 빠르게 만들고, 독자들에게는 한 달 느리게 닿는 매체다. 그런 만큼 대상에 좀 더 천착해야 잡지 다운 콘텐츠가 나온다.
작년 12월호의 이 지면 제목은 ‘골프지 같지가 않대’였다. 골프잡지 같지 않더라도 ‘쓰면서 즐거운 걸 쓰자’는 마음이라면 내년에는 좀 더 좋아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올 한 해 골프가이드는 어땠나. 좀 더 골프지 같아졌나? 아니면 쓰면서 좀 더 즐거웠던가? 돌이켜봤다. 생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더 즐겁게는 썼던 것 같다.
그럼 잡지다워졌나? 여전히 피드백은 골프잡지 같지는 않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이런 피드백도 받았다. 완독해보니 ‘읽는 맛이 있다’고. ‘골프를 모르는 데도 재미가 있더라’고.
사실 통상 잡지의 성패는 사진과 디자인이 가른다. 업계 상식이다. 우리는 당초 조금 다른 목표를 세웠다. 좋은 텍스트를 만들자는 것. ‘요즘 누가 잡지를 읽어?’라는 말은 여전히 있지만, 흥미롭게도 ‘텍스트는 죽었다’ 따위의 자조는 팬데믹 이후로 쏙 들어갔다. 결국 콘텐츠는 텍스트가 기본이라서다. 도서 판매량도 왕년의 한창때보다 여전히 저조하지만, 사람들이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반만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남들이 하지 않는, 혹은 포기한, 혹은 터부시해버린 방향으로 골프가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단 읽어보니 재미있더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스윙을 교정하려면 ‘과장’된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그건 잡지를 다시 ‘읽히는 콘텐츠’로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격렬하게, 텍스트에 집중할 계획이다.
작년에 ‘골프지 같은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써놓고선 한편으론 부담이 있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자기 의심이었다. 매 호마다 조마조마했던 건 그래서다. 그렇게 1년을 보낸 결과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골프지 같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쓰면서 즐겁고, 읽으면서 즐거우면 됐다.
독자의 ‘즐겁더라’는 피드백 이상의 보상이 에디터에게 또 있겠나.
ⓒ골프가이드 12월호, 편집장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