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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빗겨 맞춰도 바로 가는 건에 대한 고찰

#1. 관용성 전쟁
2024년 골프용품 시장, 특히 드라이버 업계 키워드는 ‘관용성’이 될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비거리 경쟁이 위주던 분위기가 한꺼번에 관용성 쪽으로 몰려간 기분이다.

 

클럽의 관용성을 나타낼 때는 MOI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Moment of Inertia, 즉 관성모멘트라는 의미다. MOI는 ‘빗맞은 샷에 대한 클럽 헤드의 저항력’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MOI 수치가 높다는 말은 헤드가 비틀림에 더 잘 저항한다는 얘기다. 이게 바로 현재 사용되는 ‘관용성’의 의미다.


요컨대 임팩트 순간, 헤드에 볼이 맞을 때, 흔들림이 적다는 거다.


#2. 골프와 인생의 평행이론
이미 아는 것처럼 골프와 인생 사이에는 많은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실제로 많이 닮았다. 18홀 라운드 한 바퀴면 그 사람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골프를 주제로 콘텐츠를 다룰 때 간혹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이건 골프라는 종목 자체의 얘기지 장비 얘긴 아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데도 최근의 ‘관용성’이라는 단어를 인생과 연관 짓게 됐다. 그러니까 ‘골프에서처럼 인생에서도 관용성을 높이는 방법은 없나?’ 그런 생각(망상에 가까운)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3. 속도 보다 중요한 건 방향
인생에서 방향성보다 중요한 것도 없다. 아, 물론 솔직히 방향성 그런 거 없이도 잘만 먹고 사는 사례도 보이지만, 일단 이 글에선 외면하자.

 

하여튼 고진영이 동생들과의 소모임 이름(속.중.방)으로 고를 정도로 골프에서나 인생에서나 ‘속도 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멀리 보다 똑바로, 아니 똑바로 까진 욕심인 것 같으니 너무 많이만 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2024년형 드라이버들이 임팩트 순간의 헤드 비틀림을 버텨내 관용성을 확보한 것처럼, 외부 요인이 나를 흔들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마음 근육을 만들어서 내 방향성을 유지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면 일상에도, 인생에도 관용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4. 어어? 잠깐만
생각이 여기쯤 다다르자 아차 싶다. 그렇게 ‘보정’되는 게 좋은 거긴 한가? 틀어질 땐 틀어지는 게 또 인생인 건 아닐까? 이 글의 '방향성'이 머리에 쥐나는 쪽을 향할 기세이니 다시 드라이버로 비유해본다.

 

그러니까 빗겨 맞췄다면 빗겨 나가는 게 더 좋지 않냐는 거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내 스윙을 고쳐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지금의 내게 필요한 과제를 파악하는 지표를 얻으니까. 빗겨 맞췄는데 똑바로 나가면, 혹은 덜 빗겨 나가면 내가 제대로 스윙했다고 착각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외부 요인에 의해 내 신념의 흔들림이 없이 기존의 방향성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난 고집쟁이로 살다 죽겠소”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거다.

 

#5. 관용성을 사양하다
내 결론은 이렇다. 이건 그냥 내 결론이다. 반박 시 여러분의 결론이 옳다. 관용성 전쟁을 위해 군비를 쏟아부은 제조사와 심혈을 기울인 개발진에겐 미안하지만, 도가 지나친 관용성은 사양하는 게 낫겠다고.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지는 대로 겪어보겠노라고. 드라이버에서도, 인생에서도 말이다. 눈앞의 라운드를 조금 망치더라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는 골퍼가 되고 싶으니까 말이다. 본격적인 골프 시즌을 앞둔 3월, 골프가이드 독자들이 ‘포어’ 대신 ‘굿 샷’이라는 외침을 더욱 많이 듣기를 기원한다. 티샷에서도, 인생에서도.

 

아, 물론 나처럼 관용성을 포기하기로 했다면 올해는 글렀을지도. 

 

편집장  박준영  ⓒ골프가이드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