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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대하소설 ‘파시’] 여울굴의 뒤집힌 달빛 1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달은 만삭의 배처럼 팽팽히 부풀어 여울굴 입구의 금줄을 창백하게 비춘다. 금줄에 매달린 짧은 오방색 끈들이 바닷바람을 따라 너울거린다.

 

바람 사이로 들어온 달빛이 젖은 돌벽과 자갈 위에 허옇게 번진다. 늘어진 그림자 무더기에도 갈라진 달빛이 스민다.

 

“으윽…아이고 할매…나 죽겄네…날 좀 살려주소…”

 

여울굴 가장 깊은 곳의 바위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은 소아가 이를 악물고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삭인다. 그녀의 비명이 굴벽을 후려친다.

 

발밑엔 돌기름을 채운 석유 호롱이 놓여 있다. 심지를 타고 올라온 푸르스름한 불꽃이 비린 바닷바람을 먹고 누렇게 뒤집히며 매캐한 그을음을 뱉는다. 그을음은 허공으로 말려 올라가 굴벽의 이끼에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물참때라 은빛 바다가 여울굴 어귀의 목구멍까지 넘나들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굴 안에서는 소아의 비명이 번지며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진통은 그녀의 아랫배를 세차게 조인다.

 

소아는 양쪽 굴벽의 툭 튀어나온 곳에 끝을 칭칭 감은 굵은 삼베끈을 양손으로 틀어쥐고 있다. 엉덩이 밑 담요 아래에 마른 짚이 겹겹이 깔렸다.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벌린 채 숨을 가쁘게 쉰다. 삼베를 쥔 두 손을 힘껏 쥘 때마다 상체가 앞으로 쏠린다.

 

삼베가 손바닥에서 미끄러지면 더 세게 감아쥔다. 거친 삼베끈이 살점을 파고든다.

 

삼베끈이 팽팽해질 때마다 배가 딱딱하게 굳으며 기운이 배꼽 아래로 몰린다. 거두어들이는 투망처럼 아랫배가 조여든다.

 

자갈을 미는 발뒤꿈치에 시커먼 뻘이 묻는다. 자갈 틈에 밴 뻘물이 발뒤꿈치에 밟혀 탁하게 퍼진다. 젖은 담요가 엉덩이에 달라붙고 눌린 짚이 바스락거린다.

 

그녀의 짚신 앞코에서 두어 발쯤 떨어진 곳에 소반이 놓여 있다. 여울굴 밖 칠산바다를 향해 놓인 소반 앞에서 송 씨가 기도를 올린다.

 

소반 위에는 촛불 하나, 물 한 사발, 접어 둔 광목이 있다. 물사발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촛불은 눌리듯 떤다.

 

굴벽 아래 자갈엔 타다 남은 촛농과 한지 조각이 붙어 있다. 촛농 위의 검은 재는 엉겨 붙어 굳었다.

 

그 옆 돌을 낮게 쌓아 꾸민 화덕 안엔 덜 꺼진 불씨가 남아 있다. 그 위 무쇠솥에서 옅은 김이 오른다.

 

화덕 곁 자갈 위에 수성당에서 가져온 보자기가 펴져 있다. 그 위에 갓 태어날 아이에게 입힐 배냇저고리 한 벌과 접힌 포대기 한 장이 놓여 있다.

 

보자기 위엔 신칼도 놓였다. 탯줄을 끊을 칼이다.

 

송 씨가 달빛 내린 바다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린다.

 

“삼신할매, 개양할매…우리 소아 지발 탈 없이 아그를 낳게 혀주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송 씨의 기도는 낮지만 간절하다. 소반 위 촛불 그을음에 그을린 눈빛이 벌겋다.

 

송 씨 등 뒤에서 소아는 삼베끈을 틀어쥔 채 힘을 쓴다. 산통이 아랫배에서 뼈마디를 타고 오른다. 골반이 생나무 쪼개지듯 비틀리고, 사타구니 끝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작살처럼 온몸을 찌른다.

 

그녀의 턱은 터져 나오는 신음을 누르듯 가슴팍에 박히고, 목구멍에서 꺾여 나온 숨소리는 마른 자갈 구르듯 굴벽에 부딪혀 깨진다.

 

“야가 어쩌이런당가.…아랫배 다 심을 써!…사람 폭폭허게 허덜 말고.…”

 

기도를 멈춘 송 씨가 호롱을 소아의 발밑에 내려놓는다. 불빛이 허벅지 사이를 비춘다. 끈적한 핏물이 자갈 틈으로 스며들고 비린내가 올라온다.

 

“아으으윽!…”

 

골반이 벌어지듯 밀리고 허벅지 사이가 타들어가듯 뜨거워지자 소아가 다시 소리를 지른다. 삼베끈이 한 번 더 팽팽해지고,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아…으…아이고, 이모! 수으 숨이 막혀 나 죽겠네!…으으윽!…으아악!…아이고 할매 날 좀 살려주소!…”

 

송 씨는 눈이 뒤집힌 소아의 가랑이를 들여다보며 숨이 넘어갈 듯 중얼거린다.

 

“개양할매, 지발 싸그 아그 좀 나오게 혀주소. 시방 내 조카 깨팔러 가게 생겼네. 후딱 좀 쑥 낳게 혀주소…”

 

칠산바다의 파도가 여울굴 어귀 바위를 덮친다. 바위를 때리며 굴 안으로 비린 바다의 숨을 밀어 넣는다. 바위를 핥던 바닷물이 잠시 빠져나갈 순간, 소아의 숨이 꺾인다. 목 안쪽에서 터진 울음이 굴벽을 대차게 들이받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