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2008년 1월 14일 문을 연 ‘지산아카데미 고시원·독서실(이하 지산아카데미)’은 전북 청년들에겐 ‘희망의 거점’이었다. 당시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의 고시원에는 월 120만~150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을 위해 건축가 백승기 박사는 ‘월 30만 원이면 먹고 자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전주에 만들었다. 지산아카데미는 지난 17년 동안 1천여 명의 공무원과 수많은 자격증 합격자를 배출하며, 전북 청년들의 꿈을 키워온 공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빈 공간의 재탄생, ‘한켠 전주’ 2025년, 지산아카데미 건물은 ‘한켠 전주’라는 새로운 이름과 기능을 얻었다. ‘한켠’은 ‘마음 한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품었다. 과거의 공부방이 디지털 세대를 위한 워케이션과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문화 교류의 허브로 다시 태어났다. 2층엔 워케이션 라운지, 영상 작업실, 회의실, 무비클럽이 꾸며졌다. 5층은 크리에이터용 동영상 스튜디오와 워케이션 공간이다. 3·4층엔 단기·중기 체류형 레지던스가, 6층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와 공유주방 ‘안부(安富)’가 들어섰다. 옥상은 루프탑 문화행사, 공연, 교류의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부안의 발전을 탐구하고, 희망찬 비전 실현을 기치로 내건 ‘부안발전포럼’이 지난 8월 1일 출범했다. 대표는 김양원 전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사무처장. 김 대표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부안·김제·군산을지역위원회 민생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포럼 출범식에서 김 대표는 “부안군은 현재 인구소멸 위험지수가 ‘매우 위험단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인 분석과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부안발전포럼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주민 삶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지역의 민·관·학·산이 함께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의 낙하산도 아니고, 사사로운 정치적 계산도 없다. 오직 지역을 위한 실용적 정치, 상식과 양심에 맞는 정치만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주산면 돈계리 출신이다. 부안초, 삼남중, 전주 영생고, 고려대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방대학원 안보과정과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수료한 ‘행정의 달인’이자 ‘투자유치의 전문가’다. Q.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A. 행정고시는 결코 나에게는 출세의 수단이 아니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행시를 택한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새싹 농부’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진안군 농어민위원장 천춘진 박사는 부귀면 신정리 출신으로 1971년생이다. 천 박사는 진안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장승초등학교와 진안중학교, 전주농림고등학교 그리고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을 차례로 졸업했다.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경농업대학에서 10년간 학업에 정진했다. 동경농업대학원에서 채소생리생태학분야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에 걸맞은 직장도 잡았다. 일본의 친환경 농자재 회사인 가와다연구소에서 2년간 근무했다. 유학 후 12년 만인 2004년 귀국해 고향인 진안에 귀농했다. 새로운 농민운동과 농업에 전념해 대한민국 6차 산업을 선도했다. 2021년엔 신지식농업인상을 수상했다. 귀농 후, 성공이 보장되는 교수직과 연구소 연구원 제안도 받았지만 마다하고 묵묵히 농부의 길을 걸었다. 농부의 길을 탄탄하게 다진 뒤, 지금은 한국농수산대학 장기현장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천 박사는 새싹을 통해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자칭타칭 ‘새싹 농부’라 불린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애농’. 농부의 길은 무모한 도전이고 바보 같은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조선 중기, 가장 뼈아픈 국난의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문제작 ‘유성룡 양산숙’이 최근 출간됐다. 출판사 ‘매거진U’가 펴낸 이 책은 ‘난세의 명재상’, ‘임진왜란의 영웅’, ‘징비록의 저자’로 추앙을 받아온 유성룡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430여 년간 이어져 온 역사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자는 역사 전문가인 양성현 작가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내일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역사와 인물 중심의 글쓰기에 전념해 온 양 작가는 ‘유성룡 기축옥사’, ‘다시 보는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왜곡된 역사 속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왔다. 신간 ‘유성룡 양산숙’은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기존 통념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조선 인구 절반 이상이 사라진 참혹한 전쟁 속에서, 누가 나라를 망쳤고, 또 누가 진정한 영웅이었는지를 되묻는다. 430여 년간 주류 권력이 덮어온 역사적 실체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수십 년 간 사료 분석을 통해 역사적 실체에 접근한 양 작가는 “유성룡은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개혁을 막고 전란을 키운 장본인”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유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개혁을 거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동양의 피카소’로 불렸던 하반영 화백(1918~2015)의 작품을 연중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지난 3월 8일, 전주에서 문을 열었다. 전주 ‘영화의 거리’ 근처에 세워진 ‘하반영 미술관’. 하 화백의 서양화, 한국화, 서예, 도자기 등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을 개관하며 황성숙 관장은 “하 화백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까지의 변천 과정을 조망하고, 하 화백의 예술혼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하 화백은 서양화는 물론 풍경화, 추상화, 한국화, 구상화, 인물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과감한 장르 탈피와 해체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면 그의 뛰어난 예술성과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미술관은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교류의 장이 되고자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 관장은 또 “K컬처 시대에 한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개관 소감을 말했다. 하반영미술관 이석동 이사장은 “앞으로 유족들과 협의해 하반영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하 화백이 생전에 예술 청소년들을 적극 후원한 것처럼 우리도 응원하겠다. 청년 공모전 등을 통해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회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전북 출신으로 인천에 살고 있는 문인화가 서주선 화백. 1955년 5월, 고창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인천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등을, 세종대와 원광대 등에서 외래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 現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고창한묵회 회장, 한국서예가협회 감사, 갤러리 예새 대표,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Q. ‘렌티아트’란? A. 렌티큘러를 소재로 하는 미술 작업이다. Q. ‘렌티아트’ 창시자다? A. 한국화 분야에서는 최초로 시도해서 ‘렌티아트’라 명명을 한 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의 한 분야를 창시한 셈이다. ChatGPT나 MS(마이크로소프트)사 AI검색 앱 Bing에서 렌티아트를 검색하면 내가 창시자로 나온다. 렌티큘러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변하는 변환효과와 3D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특수한 기법으로 사진 같은 분야에서는 일찍이 활용되었는데 한국화 분야에서는 내가 최초로 시도했다. Q. ‘렌티아트’의 문을 연 동기는? A. 40년 이상 한국화(문인화)를 그리며 서화연구실을 운영했고, 서예 문인화를 지도한 바 있다. 그런데 서예는 물론이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사단법인 신지식장학회(이사장 조정남)가 8월부터 11월까지 총 12회로 운영하는 ‘역사·문화 아카데미’ 첫 번째 발걸음이 지난 2일 서울 종묘에서 시작됐다. 신지식장학회 장학생 선발을 위한 프로그램이기도 한 ‘역사·문화 아카데미 1기’의 슬로건은 ‘왕의 길을 따라, 역사를 걷다’이고, 주제는 ‘王道(왕도):왕의 길을 걷다’. 조선의 정치 철학과 개국 정신이 깃든 공간과 시간을 따라가며 대한민국 청년들의 역사 인식과 시민정신을 고취 시키려 이 왕도 탐방 아카데미가 기획됐다. 참가 대상은 방배·풍납·김제·남원·고창장학숙 등 전북장학숙의 학생들, 전사들(전라북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출향 전북인의 자녀들, 전북권 각 대학과 고등학교의 재학생 중 역사·문화·인문 탐방에 관심이 있는 청년이다. 최소 1회 이상 현장 참여가 필수인 참가자는 탐방 기간 동안 본인이 제작한 유튜브 동영상을 공모전에 응모할 수 있다. 참가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제작한 5분 분량(회차별)의 역사·문화 동영상 콘텐츠를 제출하면 신지식장학회 장학위원회는 이를 평가·심사해서 우수콘텐츠 제작자 40명에겐 장학금을 지급한다. 장학금 규모는 ▲대상 300만 원 ▲금상 200만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사단법인 좋은이웃 중앙회(회장 김소당)와 주식회사 한전MCS 대전세종충남지사(지사장 김병일)가 28일 오전 한전MCS 대전세종충남지사 7층 대회의실에서 상호 협력 및 상생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했다. 한전MCS 대전세종충남지사 소속 4개 지점도 동참한 이번 업무협약식은 지역사회 발전과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한 지속 가능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자 마련된 뜻깊은 자리로, 각 기관 간 실질적 연대와 실행력 있는 나눔 활동의 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협약식에는 좋은이웃 중앙회 김선우 중앙자문위원장, 한전MCS(주) 대전세종충남지사 김병일 지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상호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성과 실행 계획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었다. 좋은이웃 중앙회 김소당 회장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지역사회에 더욱 따뜻한 나눔과 실천이 확산되길 기대한다”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진정성 있는 상생 협력의 기회를 열어준 김병일 지사장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혼란의 역사 속에 흔적 없이 묻혀버린 경허 대선사의 가슴 아픈 진실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시절 인연을 기다려 왔는데, 오늘 드디어 그 보따리를 풀어 경허 대선사의 진면목을 세상에 알릴 다부진 발걸음을 떼다니, 참으로 감탄할 일입니다. 작가님, 동행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25년 7월 29일, ‘경허기념관’ 홍현지 관장은 ‘동학사(東學史)-녹두장군의 멘토, 손윗처남 경허선사’ 연재의 말문을 여는 내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홍 관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월간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 창간 준비 과정에서다. 창간호에 게재할 콘텐츠 아이템을 찾던 중 홍 관장과 관련된 ‘경허기념관(鏡虛紀念館)’과 ‘경허연구소(鏡虛硏究所)’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전한 사람은 뱅기노자 백승기 대표였다. ‘녹두장군은 경허선사의 매제다. 경허선사 여동생은 녹두장군의 본부인으로 두 명의 딸을 낳았고,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 그 뒤 인연을 맺은 두 번째 부인이 아들 두 명을 낳았다…’는 것이 그 정보의 골갱이였다. 나와 백 대표 등 3명은 7월 21일 일요일 오후, 홍 관장을 만나기 위해 인사동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우리나라 전통주의 자존심’을 지금까지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키겠다고 공언해 온 전주 이강주(李薑酒)의 조정형 회장은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 하마터면 박정희 정권의 시월유신을 찬양하는 ‘호남유신문(湖南維新門)’이 될 뻔했다고 지난 21일 회고했다. ‘유신쿠데타’라는 별칭을 가진 ‘시월유신(十月維新)’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이 장기 집권과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단행한 초헌법적인 비상조치다. 전주 입성을 알리는 상징물인 호남제일문은 현재 덕진구 여의동에 서 있다. 1977년 처음 건립됐다. 왕복 4차선 도로에 폭을 맞춰 세워졌다. 높이 5m, 길이 18m 규모의 시멘트 시설물이었다. 1991년 전주에서는 제72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이 전국체전을 치르려고 전라북도는 전주 진입로를 종전의 25m에서 50m로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호남제일문이 헐렸다. 1994년 전통 한옥의 팔작지붕 구조로 다시 세웠다. 오늘의 모양새를 갖춘 건 그때였다. 당시 전주시는 호남제일문 복원 공사에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는 계획까지 포함시켰다. 그러나 사업비 20억 원을 확보할 길이 없어 육교 기능을 갖춘 일주문 형태로 축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