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 솔직하다. 하려면 확실히 될 때까지!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열정이 넘치고 배우에 대한 욕심·갈증·노력파, 끼는 기본, 의리의 부산 여자라고 소개하는 배우 홍지안은 남다르다. 그녀의 지나온 삶! 배우로서 성공 여부는 독자들의 응원과 배우 자신만이 알뿐이다. 그녀의 삶으로 들어가 본다.
본 기자가 우연한 기회에 시상식에 취재가 있어 테이블 찾아 앉은 곳, 옆 좌석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에 뭔지 모르게 끌린다. 인터뷰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델이세요! 묻자! 모델도 하고 배우도 하고 있어요. 라고 하여 인연 된 이 사람 배우 겸 모델 홍지안이다.
그녀에게 혹시! 키가~ 친오빠는 195cm인데요. 오빠를 볼 때마다 180cm가 넘으면 절대! 두려워했다고 한다. 걱정인지 덕분인지 거기까지는 아니고 178cm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마음속엔 언제나 배우를 갈망하는 듯하다.
배우라는 꿈을 갖은 시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극배우라는 직업에 빠져든 것 같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꿈을 묻는다면 반 친구들 30%는 댄스·가수·배우를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때는 스타라는 환상이 보일 정도로 심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멋적은 웃음만 나오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폭탄 머리, 피어싱중독, 튀는 옷, 음주 가무 등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하는 행동·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프로필에는 경성대학 한국화전공 중퇴라고 되어있는데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학창시절 그림에 소질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전국미술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걸 본 부모님께선 예술 감각이 있다고 느꼈는지 배움에 아낌없이 투자해 주셨다. 물론 음악과 미술 부분에 그런데 그 길이 아니었나 보다 답답했고, 행복하지가 않아 대학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자유를 찾자 곧바로 연극동아리에 들어가서 연습하고 공연을 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강한 전율’을 느껴 배우의 삶이 시작되었다.
왜! 부모님에 뜻대로 하시지 않았어요. 부모님 뜻대로 하셨으면 기자님 못 뵈었죠. 맞네요. 아마 2007년 어느 날 ‘무한도전 이상봉쇼’를 보고 끼가 발동 걸려 서울로 곧바로 상경했습니다.
힘들었을 텐데, 모델라인에 들어가서 워킹 등 기본을 배우고 2008 SBS 슈퍼모델로 데뷔했는데, 제가 속해있는 기획사는 사라지고 우연한 기회에 가수로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술 접대가 잦아지자,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배우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편입을 준비했다. 그때부터 될 때까지! 좋은 학교 갈 때까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뮤지컬 레슨을 받으며 준비했다.
고생 끝에 4년 만에 동국대학교 연극학과에 편입해서 2014년 졸업 후 2015년부터 현재까지 대학로에서 연극(극단 마방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 기회가 주어지질 않아 연기 공부하고 출연기회를 찾고자 다니면서 기회가 되어 월드슈퍼모델어워즈에 출전하여 1위와 IOK상을 받고 난 후에 좋은 기회는 자주 접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꿈은 배우다”
근황은 영화·드라마 오디션을 많이 보고 있다.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끝을 본다는 각오로 연기 공부하고 배우면서 특기를 최대한 끌어 올리려고 플루트, 뮤지컬 댄스, 노래, 개인기(부산 사투리 찰지게) 등을 연습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엄청난 보수적인 분이라고 했는데, 아~ 아버지는 중앙대를 나오셔서 부산 초읍동에서 홍 사장님으로 꽤 유명인으로 불린다. 이화여대에서 음악을 전공하신 고상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여기에 외할아버지께서도 조금 유명한 분이셔서 집안이 완전 보수적입니다.
외할아버지가 궁굼하다. 포털에서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경찰계에서 “별을 단 이광수 치안감”이라고 1930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고국에 돌아와서 6.25 전쟁 때, 해병대로 전입하여 중령으로 경찰계로 진출, 마산경찰서 서장과 청와대 경비대장, 치안감으로 승진하여 해양경찰청장을 역임하고 81년에 퇴임을 하신 분이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하기가 쑥스럽네요.
바이러스 전쟁으로 연예인들은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어머니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모가 한예종 국악과 교수님으로 계시는데 저에 학창시절은 이모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이 삶이었다. 스트레스는 음악을 들으며 연습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대부분 보내고 그림 그리기, 못 쓰는 물건 리폼하기 등 다양한 취미를 이어가면서 연습하고 배우는 것,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이다.
미즈 모델 홍지안이라고 기사가 아~ 그건 오해가 있는데요. 저는 미혼입니다. 결혼해서 돌아온 적도 없습니다. 포털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미즈란? 결혼과 관계없이 부르는 경칭이라니 그걸로 위로요.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연극·뮤지컬 공연장에 항상 찾아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언젠가는 믿고 보는 독보적인 배우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이 사랑해주시지만 좀 더 노력하여 저를 아껴 주신 분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가 될께염. 사랑해염.
홍지안은 뮤지컬·연극배우로서 대중들 앞에 좀 더 다가서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에 트롯외전에 합격이 되어 촬영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본 기자가 바라본 홍지안의 당당함, 솔직 진솔한 이야기에 구독자들과 함께 반해보면 어떨까요?
연극 ‘낙타상자’(주연 호호역)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뮤지컬 “그대와 영원히” 한성아트홀 등에서 최근에 출연했던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