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3.8℃
  • 맑음강릉 5.3℃
  • 구름조금서울 0.4℃
  • 박무대전 -0.7℃
  • 맑음대구 -0.2℃
  • 연무울산 5.2℃
  • 박무광주 3.6℃
  • 맑음부산 7.4℃
  • 맑음고창 0.4℃
  • 구름조금제주 8.9℃
  • 구름많음강화 -2.6℃
  • 맑음보은 -2.9℃
  • 구름많음금산 -2.4℃
  • 맑음강진군 0.3℃
  • 맑음경주시 -2.0℃
  • 구름조금거제 4.0℃
기상청 제공

[혼자수로 만나는 세계명화] 다비드 〈마라의 죽음〉

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과 같은 사이즈로 작업한 세계명화 작품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다비드는 누구인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의 화가로 왕정과 혁명의 자코뱅 정부, 나폴레옹 정부의 실력자로 프랑스 회화에 큰 영향을 준 신고전주의 초상화와 역사화, 전쟁화를 그렸다. 앵그르(프랑스)를 비롯한 당시 고전파 화가들은 모두 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다.


그 덕에 파리는 나폴레옹시대가 끝나고도 유럽 미술의 중심지로 굳건할 수 있었다.


32세에 최고 영예 거머쥐다
다비드는 1748년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27세 때 로마에서 유학하며 고전적 그림을 배웠다.


32세에 파리로 돌아와 이듬해인 1781년,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면서 루이 16세로부터 루브르궁전의 아틀리에에서 생활할 자격을 얻는 최고 영예를 안았다. 이후 다비드는 많은 돈도 벌었다. 50명 이상의 도제를 두었으며, 마르게리트 샤를로트와 결혼했다.


감도는 혁명의 기운
다비드는 의뢰받은 〈호라티우스의 맹세〉를 그리기 위해 “로마를 그리려면 로마에서만 그릴 수 있다”며 제자와 함께 로마로 갔고, 이때 그린 작품을 1785년 살롱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로마 공화정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담았다는 평을 받기도 해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41세인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변호사이자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였던 다비드는 왕정에서 받은 모든 영예를 던지고 자코뱅에 가입했다. 그는 혁명에 깊이 관여한 주요인물이 됐고, 미술계 최대의 권력자가 되었으며, 국민공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44세 때, 친구인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펼치다가 반대파들로부터 처형당하자 그도 유폐됐다.


나폴레옹과 다비드

그가 〈마라의 죽음〉을 그린 1793년, 45세 때까지 혁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1799년 51세가 되던 해, 나폴레옹이 집권하며 복권된 다비드는 열렬한 나폴레옹 추종자가 됐다.

 

그는 나폴레옹의 전속 화가로 일하면서 〈대관식〉과 〈생 베르나르 언덕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고, 56세 때는 나폴레옹 1세의 궁정 수석 화가가 됐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작품에 로마풍의 신고전주의를 투영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나폴레옹 실각 후 1816년 다비드는 결국 추방됐고, 브뤼셀에서 외로운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가 1825년, 77세로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민중의 벗, 마라의 죽음
작품 〈마라의 죽음〉은 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인 ‘장 폴 마라’의 죽음을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 다비드가 그린 그림이다. 1793년 다비드가 45세가 되던 해였다.

 

‘민중의 벗’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마라는 반대파를 지지했던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50세던 마라의 집 욕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무렵 다비드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가결했던 국민공회의 의원으로, 마라의 혁명 동지였다. 마라가 죽은 지 3일 후에 의회의 의뢰로 3개월 동안 이 작품을 그렸다.

 

마라의 자비를 무자비로 갚다
마라는 심한 피부병을 앓았기에 욕실에서 집무를 보며 식초를 적신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욕실 안에는 아무런 가구나 장식이 없어 엄격하고 간소한 혁명가의 청빈함을 보여 준다.


1793년 7월 13일 저녁. 마라는 욕조 밖으로 팔을 내민 채, 나무 상자 위에서 프랑스인들을 향한 연설문을 쓰고 있었다. 암살자 코르데는 저녁 7시 30분경 마라의 집에 방문했다. 마라를 만나게 해달라는 코르데가 식구들과 실랑이를 벌이자, 마라는 그녀를 욕실로 들게 했다.

 

코르데는 탄원서를 내밀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을 얻을 권리를 누릴 만큼 충분히 비참하다’는 내용의 거짓 탄원서를 보던 마라는 ‘그들이 며칠 안에 모두 단두대에서 처형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순간 코르데는 품에서 날이 선 조리용 칼을 꺼내 마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갈비뼈 사이를 찔렀다. 칼은 폐를 꿰뚫었고, 마라는 즉사했다. 어려운 자를 위해 ‘도움’을 주려다 결국 처참하게 암살당한 것이다.

 

욕조에서 암살된 마라를 기리며
코르데는 그 칼을 빼 바닥에 던졌고. 그녀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마라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경찰은 여성 혼자서 암살을 감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배후를 캐기 위해 코르데를 심문했지만, 그녀는 어떤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았다.


작품 속에서 욕조 안에는 마라가 흘린 피가 보인다. 밖으로 늘어뜨린 오른손에는 깃펜이, 왼손에는 코르데가 전달한 거짓 탄원서가 들려있다. 탄원서의 문장에서 마라의 피 묻은 손가락은 ‘자비’라는 단어 위에 얹혀있다.

 

다비드는 코르데의 실제 편지에서 ‘도움’을 ‘자비’로 바꿨고, 범행도구인 검은 칼자루는 밝은색으로 바꿔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