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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수로 만나는 세계명화] 드가 〈더 스타〉

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가가 표현 못한, 숨겨지고 변화하는 빛을 담아 원작과 같은 규격의 혼자수로 작업한 세계명화의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드가는 누구인가
‘에드가 드가’는 1834년 파리에서 태어나 1917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유한 은행가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기 계승을 위해 파리대학에서 법률을 배웠으나, 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발견하고 법학을 포기하고 미술에 뛰어든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덕분에 아버지가 죽기 전인 40대가 될 때까지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들이 빚을 지고, 사고를 냈을 때 이를 도맡아 처리하면서 가장의 몫을 다했다.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했을 때 자진 입대했다. 1890년대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때 반(反)드레퓌스, 반유대주의 입장을 표명해 반동보수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고전파에 대한 경외
21세인 1855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앵그르의 제자 라모트에게 사사했고, 앵그르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선과 전통적인 드로잉을 충실하게 배웠다. 이때부터 평생토록 이 고전파의 거장에 대한 경외를 품게 된다.


이듬해인 1856년부터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 그는 3년간 머물면서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했다. 루브르와 주변의 미술관을 드나들며 7백 점이 넘는 거장들의 미술 작품을 베껴 그렸는데, 당시 그의 주된 관심은 ‘인물’이었다.

 

사실 그가 살던 시대는 ‘풍경화의 세기’라고 할 수 있었는데, 드가에게 자연은 ‘지루한 대상’일 뿐이었다.


기를란다요, 만테냐, 니콜라 푸생과 한스 홀바인 등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자신의 독창적 화풍을 만들던 그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 전에 7회나 출품하여 인상주의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어떤 특정한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

 

드가 “나는 사실주의 화가!”
그의 작품은 1880년대부터는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얻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거장 대우를 받았다. 그의 작품 중 발레리나나 공연장, 경주장 풍경 등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인상주의뿐 아니라 사실주의나 낭만주의에도 관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드가는 인물이 취하는 동작의 순간적인 포즈를 정확히 묘사해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하는 기법을 강조했다.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는 것을 불쾌해하며 자신이 사실주의 화가라고 주장했다.


매체를 망라한 응용력
자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는 명실상부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받았다. 파리의 생활에서 찾은 주제를 정확한 소묘와 화려하고 신선한 색채감으로 작품을 그렸다. 특히 사상과 미술의 새로움에 대해서는 항상 열린 자세와 관점을 유지했고, 그의 미술 작업에는 거의 모든 매체가 이용됐다.


유화와 목탄, 파스텔을 이용한 드로잉과 판화와 조각, 사진 작업까지 망라한 각각의 기법들을 범상한 방법으로 응용해서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장이었다.


36세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눈은 65세부터는 거의 안 보였다고 전해지는데, 말년에 시력이 심하게 나빠지자 그림보다 조각에 몰두했다. 그의 조각 역시 평생에 걸쳐 천착해 온 발레리나와 말을 주로 대상으로 잡았고, 걸작들을 만들어 냈다. 자연히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명성은 꾸준히 높아졌고,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됐다.

 

 

드가가 사랑한 테마, 발레
에드가 드가는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친구의 소개로 무대 뒤의 분장실이나 대기실과 연습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 특히 발레 연습실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자연스러운 자세나 동작은 긴장이 풀어지거나 지쳤을 때 나온다’고 생각했고, 이를 화폭에 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발레를 주제로 한 그의 작품 중에서 ‘무대 위에 선’ 발레리나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전체의 1/5도 되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바로 그 순간을 담다
발레리나를 화폭에 담은 이 그림의 제목은 ‘더 스타’다. 무대 위의 조명은 발레리나와 그녀의 연기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발레리나는 한쪽 다리로 균형을 잡으며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발레리나의 하얀 드레스에는 꽃들이 얹혀있다. 그녀의 목선으로부터 리본이 흘러나온다.


왕관을 쓴 발레리나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뒤로 젖힌 고개와 살짝 감은 눈은 마치 성공적인 공연에 도취된 듯하다. 붉게 물든 뺨은 그녀가 느끼고 있을 만족감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 순간 그녀는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이 짧은 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을 ‘스타’로 끌어올릴 춤을 추며 모든 걱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녀가 눈을 감고 행복에 겨워 춤을 출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간결한 필치로 순간을 포착하다
드가는 이 작품을 그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파스텔을 사용했다. 그 후 그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배운 인쇄술인 모노타이프 위에 파스텔을 첨가한 방식으로 그렸다.


이 작품도 발레 공연장의 분위기와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매우 간결한 표현만으로 화폭에 생생히 재현해 낸 작품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무대 위의 특별석에서 공연의 한 장면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에 빠른 필치로 공연의 한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발레의 역동적인 모습과 환상적인 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혼자수 이용주
비단 실로 수놓아 작품을 표현하는 작가. 1974년 처음 자수를 배웠다. 회화는 순간의 빛을 화폭에 담는다. 반면 이용주 작가는 변하고 움직이는 빛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정통자수를 현대와 접목해 가장 한국적인, 자긍심 넘치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특히 세계명화는 원작가가 표현하지 못한, 순간순간 변하는 빛을 모아 한 화폭에 표현한 독창적 작품이다. 14명의 전·현직대통령과 세계적 유명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초대전을 열어주고 있다.

근 30년 동안 작업한 많은 혼자수 작품들을 담을 ‘그릇’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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