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홍종락 기자 | "한옥은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의 삶이 채워진 특별한 공간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옥에서 우리 삶의 기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종가가 특별한 이유는 집집마다 역사가 흐르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어른이 사셨던 삶의 자료로 (조상의) 유묵이나 문집, 현판 등 문화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동춘(60) 사진작가의 말이다. 이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경북 안동을 건넌방처럼 드나드는 사진작가다. 종가에 매료돼 종가 사람들과 종가의 삶터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세월이 16년이다. 특히, 안동에서 한옥뿐 아니라 <관·혼·상·제>의 원형을 기록하는 작업도 빼놓지 않았다.
이 작가는 “종가의 사람들인 종손들의 삶과 의례의 공간은 지난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남겨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종가를 맞이하는 것은 잊고 있던 유년의 추억과 조상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마법과도 같은 풍경”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종가, 종택의 풍경과 문화유산을 한 장의 사진에 응축해서 표현한다. 글로는 모두 담을 수 없다. 선비정신이 묻어나는 한옥은 물론 의식주와 제사 등 전통문화의 면면을 렌즈에 담았다. 이 작가는 “종가의 의례와 예법은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다잡아 일으켜 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지기까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종가에 발을 들인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남녀 간 분별이 지금보다 훨씬 극심했다. 오죽하면 종가와 고택 등 문중의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자가 남의 집 제사에 참관하며 사당을 들락거리고 제청에 오르는 법은 없다”며 “촬영은 고사하고 곁눈질도 관례상 없었다”며 초를 치기 일쑤였던 것이다.
이 작가가 짧은 머리를 한 것도 이때다. 남자 옷을 입고 최대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감췄다. 예술가로서 사명감과 진정성을 보인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그러길 3년, 문중 관계자들의 마음이 열렸다. 낯선 사람이라면 빗장부터 걸어잠그고 보던 종손들이 먼저 이 작가를 찾을 지경에 이르렀다. 종손들은 하나같이 제사 등 문중 행사의 일정까지 알려주며 촬영 여부를 묻게 된 것이다.
이 작가가 안동에 첫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오로지 한옥, 그 하나만 보고 서울에서 출발해 왕복 600㎞에 이르는 거리를 수시로 오갔다.
이 작가는 와룡면 군자리 후조당을 보고 임진왜란 이전의 한옥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과 퇴계 선생의 친필인 후조당 현판에 매료됐다. 인근의 탁청정은 현존하는 경북 최초의 고조리서인 수운잡방의 저술을 시작한 탁청정 김유의 집이고 수운잡방을 물려 받은 설월당 김부륜의 집도 지척이다. 당시 설월당 종손의 “조상에게 물려받은 이 집의 종이 한 장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서 물려주니 너도 지켜달라”는 말은 일상이었다. 왜란, 호란, 일제 강점기, 6·25를 겪고도 고택을 지켜낸 종손의 후손된 도리가 이 작가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그 이후로 이동춘 작가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을 간직한 안동의 고택과 사람이야기에 천착해 왔다. 서울 인사동, 독일 베를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불가리아 소피아, 미국 UC버클리, LA한국문화원 등 해외를 두루 돌며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집, 종가>를 테마로 사진전을 열었다. 도산구곡 예던길, 태사묘, 한옥, 종가, 서원 등을 포함해 해녀, 한지, 소금, 맛집, 누비장 등을 주제로 사진집, 달력 등 출판 활동도 이어왔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상주, 경주, 제주 등 다양한 곳에서 전통과 역사를 기록했다.
이 작가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5월29일까지 열리는 문화역서울284 공예기획전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일일청량’시리즈로 2.4X3m 크기의 대형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문화관광체육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다. 이곳에서 전시 중인 사진은 안동의 군자마을 후조당과 오미마을 학암고택, 경기도 조안면에 있는 한옥사진이다.
이 작가는 “학암고택의 시렁 위에 놓인 소반은 우리 전통공예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며 “군자마을 후조당 사랑채의 대청마루에 앉아 즐기는 차경으로 들어열개문, 횃대에 걸린 조각보와 기와, 나무, 산이 조화롭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의 사진은 줄행랑의 문을 모두 열어 기하적인 문 속의 문을 보여주는 공예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사진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세 작품은 모두 전통 한지에 사진 인화한 것이다. 한지는 통도사의 성파 스님이 손수 제작했다. 스님은 한지 제작을 위해 3X25m 크기로 틀을 만들고 많게는 9명이 붙어 틀 안에 물을 채운 뒤 닥죽과 황촉규를 섞어 골고루 펼친 다음 틀 안의 물을 서서히 빼고 서서히 건조했다. 이같은 종이 1장을 건조하는 데만 열흘이상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한지에 인화 하는 데도 열흘가량이 더 소요되는 등 넉넉잡아 근 한 달을 작업에 투자했다.
이 작가는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인 세월의 울림이 한옥 사진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라며 “앞으로 계획은 작년에 발간한 <한옥·보다·읽다> 책을 영문으로 번역·발간해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5년 넘게 촬영한 안동만의 문화와 그 원형을 지구촌에 알리는 데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서울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 충무로 광고사진 스튜디오에서 6년,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10여 년간 여성지 사진기자로 순간순간을 렌즈에 담았고 이후에는 포토스퀘어 대표로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