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눈 깜짝할 새 지나 8월이라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월간지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말이 마감 몇 번 치다 보면 금방 여름 되고, 겨울 오고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다. 올해도 그랬다. 정신없이 마감해놓고 잠깐 여유를 부리려다 보면 또 ‘그 시기’가 와 있다.
8월? 8월이라면…
우리는 여름철 표지는 되도록 밝고 화사하고, 시원한 컷을 선택하려고 한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물세례를 맞는 사진은 골프 잡지 에디터에게 과장 좀 보태서 ‘없으면 죽는’ 소재가 아닐까 망상도 해본다.
7월호 표지가 홍지원의 물세례 사진이었기에 8월호는 조금 다른 테마를 잡아야 했다. 마침 미셸 위의 ‘라스트 댄스’ 소식이 있었기에 더 볼 것도 없이 이 주제를 택했지만, 개인적으로 8월은 좀 잔혹한 달이기에 여러 단상이 들었던 한 달이었다.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윤이나 얘기다. 2022년 KLPGA를 주름잡던 윤이나는 본지의 8월호 표지가 됐다. 윤이나의 우승과 물을 맞으며 도망치던 표정은 8월호에 제격이라, 읽지 않을지도 모를 개인 인스타그램으로 ‘덕분에 좋은 표지사진을 쓸 수 있게 됐다’고 DM을 보내기도 했다.
그게 작년 7월 말이었다. 인쇄소에 파일을 넘기고 난 다다음 날, 윤이나의 오구플레이 사건이 불거졌다. 소속사를 통해 단독 인터뷰를 약속받았던 무렵이었다. 기가 막힌 인터뷰로 그를 응원하리라. 솔직히 이 표지를 시작으로 미래의 간판급 스타와의 인연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던 입장에서 하늘까지는 아니지만, 하여튼 뭔가가 무너지긴 무너졌다.
그렇게 윤이나는 골프가이드의, 아니 에디터 본인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자꾸 그를 언급하는 게 윤이나에게 썩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의견은 달라도
윤이나가 3년이라는 징계를 받고, 1년이 지났다. 재질이 뛰어난 선수니 조기 복귀를 허락해달라는 탄원부터 다른 실수도 아니고 오구플레이인 만큼 채울 건 채우고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게 옳다는 조언까지 의견은 가지각색이다.
윤이나를 질책하고 비난하는 측이든, 그의 복귀를 맹목적으로 성토하는 측이든, 골프선수로서의 윤이나를 기다리는 건 꽤나 공감대가 형성됐다.
솔직히 윤이나의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볼 때, 우리는 한동안 이런 선수를 보지 못 할 것이라는 당혹감이 있었다. 윤이나의 사건에서 다른 건 몰라도 골프 본연의 정신을 위배한 선수에게는 때론 가혹하리만치 보수적이기도 한 국내 골프팬들의 의견이 갈라진 이유다.
어쨌든 윤이나를 ‘밀기로’ 결심한 지 1년. 올해 8월은 괜스레 헛헛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김민별이 나타났다. 시즌 초 다른 루키들보다 빠르게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박아 넣자 ‘그새 이런 선수가 올라온다고?’라며 반색하게 됐다.
‘그래, 올해는 김민별이다’라고 마음먹게 됐었다. 그런데 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방신실이 나타난다. 윤이나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를 기량을 선보인다. 방신실은 심지어 9월 아시안게임에 나간다. 골프팬이라면 미리 방신실의 팬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가 했더니 이번에는 황유민이 부상한다. 작은 체구니까 올해 루키 중에서 세밀한 숏 게임으로 경쟁하겠지 싶었더니 이건 또 웬걸. 드라이버를 뻥뻥 내지른다. 방향성이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현재 기준으로 신인상 포인트 1위는 황유민이다.
헛헛할 줄 알았던 8월은 예상보다 더 뜨겁다. 윤이나의 그림자는 많이 지워졌지만, 여전히 이 루키들과 경쟁하는 윤이나를 그리게 된다. 그런 8월이다.
되는 집안에는 이제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루키들의 활약을 보며 한편으로 KLPGA가 ‘되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KLPGA의 선수 지키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도 익히 알지만,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부자도 3대를 못 간다'던가. 그간 고군분투하며 여기까지 위상을 끌어올린 KLPGA에게 이제는 돌파력이나 저돌성보다 현명함과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인 건 아닐지.그래야 우리가 이런 선수들을 꾸준히 볼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KLPGA는 휴식기를 마치고 8월 3일, 삼다수 대회로 재개된다. 루키 3인방과 기존의 강자들이 가을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번 각축을 벌일 것이다. 여전히 윤이나는 없고, 작년 8월호의 표지를 보는 나에게는 잔혹할 것 같고.
편집장 박준영
ⓒ골프가이드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