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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과 골프 갤러리

3월 초 연예계는 아이돌 그룹 에스파 멤버인 카리나의 열애설로 뜨거웠다. 카리나는 팬들의 비난에 급기야 사과문을 올리며 사죄했다. 열애보다 이 사과문이 대중에겐 더 큰 논란거리였다. 성인인 아이돌이 대체 팬들에게 왜 사과해야하는 것인가란 의견부터 아이돌 산업은 ‘대리 연애’나 다름없기에 사과로도 용서가 안 된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대중들은 대부분 ‘마이’라 불리는 에스파의 아이돌 팬덤을 비난했다. 앞서와 같이 아이돌도 ‘성인이자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무분별하게 비판받는 한 아이돌 팬덤을 보면서 어쩐지 골프 갤러리가 생각나 마음이 짠해졌다.

 

EDITOR 방제일

 

아이돌 산업은 아무리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도 팬덤이 탄탄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아이돌은 팬덤 장사’라는 말은 이제 누구나 아는 업계 진리다. 음악 산업에서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것은 바로 앨범 판매다.

 

그러나 과거와 그 수익 구조와 규모가 다르다. 1990년대 100만장이 팔린 앨범들은 전 국민이 알 정도로 모든 거리와 집마다 울려 퍼졌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600만 장이 넘게 팔린 앨범(세븐틴의 ‘FML’ 앨범은 지난해 672만 장이 팔렸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손오공’이다.)의 수록곡은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을지언정 메가 히트곡은 아니다. 이는 기성 세대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사실 600만 장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1명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만큼 어미어마한 판매량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누구도 이 앨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바로 이 앨범의 역할이 그저 단순히 노래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돌 앨범은 일종의 ‘포켓몬 띠부씰’이나 ‘게임 아이템 현질’과 같은 맥락이다.

 

이 앨범에는 랜덤으로 아이돌 멤버의 포토 카드가 들어있다. 그 뿐 아니라 로또처럼 이 앨범을 많이 사야 팬사인회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일종의 ‘사행성 아이템’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돌 팬덤은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을 아이돌의 앨범과 굿즈, 콘서트에 가기 위해 사용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의무이자, 권리 그리고 소위 ‘부심’이다.

 

이쯤되니 카리나의 사죄와 아이돌 팬덤의 분노가 어쩐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골프 갤러리는 어떨까. 골프 갤러리도 지방을 비롯해 매주 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에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방문한다. 그런데 어째 아이돌 팬덤에 비해 대우와 영향력은 매우 미비하다. 그들이 돈을 안 쓰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뿐인가? 조금만 뭘 잘못해도 진상이라는 소리는 기본이며, 에티켓이 없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다른 선수의 팬들과 은근한 신경전과 자리 싸움까지 피곤한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매번 대회장을 방문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투어를 즐긴다. 이들과 아이돌 팬덤과 다른 것이라고는 사실 ‘나이’뿐이다. 결국 어느 노래 가사처럼 열광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프로 선수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선수들이 좋은 성적과 환환 미소를 보이면 만족할 뿐이다. 어쩐지 이런 푸대접에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돌 팬덤처럼 본인이 선택한 일이다. 아이돌 팬덤도 골프 갤러리도 이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건만 터지면 이 아이돌 팬덤과 골프 갤러리들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팬심이라는 미명하에 진상짓을 하지 말라는 모두들 손가락질한다.

 

아주 우스운 사실은 앞서 말했듯 그 산업이 이들에게 기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갑자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명대사가 생각난다다. 도박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면, 바로 당신이 호구라는 말. 아, 물론 차이는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호구’가 됐고 본인들이 ‘호구’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주지하고 싶다. 대중들이 쉽게 비판하고 지적하는 그 ‘호구’처럼 보이는 이들이 결국 그 산업의 파이를 키웠다는 것이다. 아이돌 산업도 골프 산업도 말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KPGA 투어와 KLPGA 투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KLPGA 투어는 KPGA 투어의 하부리그처럼 보일 정도로 투어 규모가 작았다.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나왔고, 갤러리들이 대회장을 찾으면서 20년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아이돌 팬덤과 같이 한 프로의 팬을 자처하며 구름떼를 지어 따라다니는 갤러리까지 생겼다. 물론 이런 팬클럽 갤러리로 인해 그저 골프를 사랑하는 일반 갤러리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생겨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스타 선수의 팬클럽 갤러리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한 골프 칼럼니스트는 이를 두고 더 성숙한 갤러리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KLPGA 투어의 번성에는 팬클럽 갤러리의 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조금 더 과장해 말하자면, 오히려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돌 팬덤과 골프 갤러리의 종종 눈살 찌푸려지는 ‘진상’짓에 우리는 조금 더 관대해야 한다. 그것이 그 산업이 짊어져야할 업보이자 기댈 언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