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대진 기자 |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감액(減額) 예산안’이 10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간 극단적인 정치 대립으로 국가 예산마저 합의하지 못하고 다수당이 일방 처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673조3,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677조4,000억 원에서 4조1,000억원(0.6%) 줄어든 것이다. 정부의 ‘비상금’인 예비비가 4조8,000억 원에서 2조4,000억 원 수준으로 깎였다. 국고채 이자 상환 비용 5,000억원, 대통령비서실과 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가 전액 삭감됐다.
세부 삭감 내역을 보면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 82억 5,100만 원 △검찰 특정업무경비 506억 9,100만 원 △검찰 특활비 80억 900만 원 △감사원 특경비 45억 원 △감사원 특활비 15억 원 △용산공원 예산 352억 원 등 정치적 성격을 지닌 예산의 감액 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기획재정부의 예비비 2조 4,000억 원과 △혁신성장펀드 238억 원 △원전산업성장펀드 50억 원 △기초연금 급여 500억 원 △아이돌봄 지원 돌봄수당 384억 원 △일경험 지원 46억 원 등 정부 정책 사업 예산도 삭감됐다.
정부와 여야는 이날 본회의 직전까지 감액 예산안 처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기획재정부는 정부 예비비 1조8,000억 원 등 총 2조1,000억 원을 되살려달라고 더불어민주당에 요청했다. 그 대신 민주당이 요구한 증액안 중 이재명 대표의 공약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예산 4,000억 원, 고교 무상교육 예산 3,000억 원 등 총 9,000억 원을 증액하겠다고 제안했다.
국민의힘도 감액된 예산 중 1조6,000억 원을 복원하고, 민주당이 요구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 3,000억 원을 포함해 총 1조8,000억 원을 증액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 1조 원을 포함해 정부가 요구한 2조1,000억 원 규모에 상응하는 증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 예산 656조6,000억 원보다 16조7,000억 원(2.5%) 늘어난 규모다.
민주당 소속 박정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정부 예산안에서 0.6%를 삭감했을 뿐”이라며 “국민과 기업에 피해가 간다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여야 합의를 통해 국민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안타까운 심정"이라면서도 "정부는 통과된 예산을 기반으로 민생안전과 대외 불확실성의 확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예산의 집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향후 민생예산 등의 증액이 필요할 경우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상 정한 재난, 경기침체 등 추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본예산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추경 편성으로 해결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추경 편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내년도 경제 하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정부 지출마저 줄어들 경우 경제에 더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제 하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인 만큼, 감액된 예비비를 어느 정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는 내년도 예산 집행이 시작되는 즉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준비에 착수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