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고흥군이 다시 한 번 ‘속도’를 무기로 들었다. 올해도 햅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조생종 벼 모내기를 누구보다 먼저 시작했다.
11일, 고흥군 포두면 송산리 들녘엔 모판을 실은 경운기와 이앙기가 분주히 움직였다. 들녘에 모가 심기기 시작한 건 오전 9시쯤. 전국 평균보다 9일이나 이른 이 시점에서 이미 농민들의 손놀림은 숙련되어 있었고, 공영민 군수도 직접 이앙기를 몰아보며 본격적인 영농철의 시작을 알렸다.
“이 벼는 8월 초면 수확 가능합니다. 한여름 햇살 밑에서 첫 햅쌀이 나옵니다.”
현장의 한 농민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쌀도 타이밍입니다. 일찍 내놓으면 소비자들도 주목하죠. 우리가 고생한 보람이 그때 느껴져요.”
올해 고흥군이 이앙을 시작한 조생종 품종은 ‘조명1호’. 전라남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신품종이다. 밥맛이 뛰어나고 도정률이 높아 가공과 유통에 유리하며, 병해에 강하고 쓰러짐(도복)에도 잘 견디는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발아(익기 전 싹이 트는 현상)에 강한 특징이 있어 안정적인 수확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이번 모내기를 시작으로 고흥군은 총 383ha 면적에서 조생종 벼를 재배할 계획이다. 이는 군 전체 벼 재배 면적 중 상당 부분으로, 햅쌀 수확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8월 초, 타 지역보다 약 10일 이상 빠른 수확이 가능해, 소비자들이 햅쌀을 기다리는 시기에 맞춰 ‘고흥산 햅쌀’이라는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심을 수 있다.

■고흥쌀, 이제는 ‘속도+품질’로 승부
햅쌀 시장은 이제 단순히 빠르기만 해선 살아남기 어렵다. 맛과 품질까지 따라줘야 소비자 선택을 받는다. 고흥군이 ‘조명1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단한 입자, 부드러운 식감, 윤기 있는 밥맛까지 갖춘 이 품종은 최근 소비자 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군 관계자는 “조명1호는 향후 고흥 대표 벼 품종으로 육성할 가치가 있다”며, “빠른 수확뿐 아니라 품질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품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품종 선택 이면에는 고흥군의 탄탄한 기술 지원이 있다. 고흥군 농업기술센터는 육묘용 상토, 유기질비료, 토양개량제 등 필수 기자재를 적기에 공급하고, 병해충 방제 지도도 병행하며 농가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특히 벼 이앙 초기에는 일교차가 심한 시기이기에, 관수 조절과 초기 활착에 대한 현장 지도가 중요한데, 군은 이를 위해 담당 지도사들을 조별로 편성해 현장 밀착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햅쌀 시장 ‘선점’에서 ‘선도’로…고흥의 다음 스텝
고흥군은 햅쌀을 단순히 농산물로 보지 않는다. 지역 브랜드의 힘을 키우고, 시장 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핵심 자원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공영민 군수는 "이제는 단순히 빠른 수확이 목적이 아니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먼저 모내기를 한다는 건 그만큼 준비가 돼 있다는 뜻입니다. 햅쌀은 품질이 생명이기 때문에, 지역 이름을 걸고 나가는 이상 우리가 더 꼼꼼해야 합니다. 고흥군이 농업에서도 브랜드 시대를 만들어가야죠.”
이번 조생종 벼 재배는 농가 소득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통상적으로 햅쌀은 일반 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며, 빠른 출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판매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 고흥쌀이 이미 인지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여기에 ‘햅쌀 조기 출하’라는 이점이 더해지면 시장 반응은 더욱 긍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풍요로운 수확을 위한 첫 물꼬
고흥군은 6월 중순까지 순차적으로 모내기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재배·관리 단계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후 병해충 방제, 제초, 수분 관리 등 세부 농업 기술 지도가 이어지고, 가을 수확에 맞춰 브랜드 마케팅 전략도 함께 추진된다.
군은 올해에도 햅쌀 수확 시기에 맞춰 소비자 대상 시식행사, 온라인 판매 촉진, 대형마트 입점 등 다양한 유통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고흥의 들녘은 이미 분주하다. 누구보다 일찍 움직인 농민들의 손끝은, 누구보다 빨리 소비자 식탁에 오를 고흥쌀을 향해 있다. 빠른 모내기, 빠른 수확, 그리고 빠른 선택. 고흥군은 올해도 농업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햅쌀 한 톨에도 지역 농업의 미래를 담겠다는 의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