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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는 아Q인가”… 루쉰의 경고, 대학로 무대에서 되살아나다

하이브리드 인형으로 되살린 아Q, 시대의 인간을 비추다
‘정신승리법’의 민낯… 오늘의 우리를 향한 루쉰의 질문
비루함 속에 드러난 인간의 조건, 대학로에서 다시 읽는 고전

지이코노미 유주언 기자 | 중국 현대문학의 고전 ‘아Q정전’이 하이브리드 인형과 배우의 결합이라는 낯선 형식을 입고 대학로로 돌아온다. 시대의 모순에 떠밀린 작은 인간의 비극을 2025년 한국 사회의 초상에 겹쳐 묻는 이번 무대는, 루쉰 문학이 왜 오늘까지도 ‘냉혹한 현실의 거울’로 남았는지 생생히 증명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작으로 선정된 공연 ‘아Q정전’이 오는 11월 27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관객을 만난다. 2023년 초연 당시 “인형과 배우가 결속·해체되는 기묘한 장면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은 작품은, 이번 재연에서 더 정교한 인형 활용과 밀도 높은 구성으로 돌아온다.


연출은 정욱현, 각색은 이주영이 맡았으며 민일홍·전신영·윤지홍 등 9명의 배우가 무대를 채운다. 제작은 공연창작소 숨이 맡고, 공연은 90분 러닝타임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아Q는 이름도 성도 없이, 농촌 웨이좡에서 미련하고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하층민이다. 조롱받고 폭행당하면서도 “내가 이긴 셈이다”라는 자기최면을 반복하는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씁쓸하다. 작품은 이런 아Q를 단순한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기획진은 “아Q는 시대에 휘말린 나약한 인간의 상징이며, 조롱하는 우리가 곧 또 다른 아Q일지 모른다”고 밝힌다. 관객은 인형과 배우가 결합된 형태의 주인공을 통해 ‘주체적 인간’과 ‘조종당하는 인간’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공연은 루쉰의 대표작 ‘아Q정전’의 주제의식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신해혁명 이후 혼란한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혁명의 뜻도 모른 채 시류만 좇던 아Q의 비극은 결국 ‘총살형’으로 이어진다.


기획진은 “오늘날에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아Q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아Q를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 중앙일보·경향신문·한겨레 등 주요 언론이 “루쉰을 알면 현대 사회가 보인다”고 평한 이유이기도 하다.

 

초연 때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하이브리드 인형’이다. 기태인 인형제작가가 만든 인형에 김경란이 움직임을 부여하고, 배우가 그것과 결합해 절반은 인간, 절반은 조작된 존재 같은 형상을 만든다.


연출진은 “결속된 듯 보이지만 늘 해체의 위험을 안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관객은 인형과 배우의 경계에서 인간의 자유와 굴종, 주체성과 무력함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이번 재연에는 민일홍(아Q)을 비롯해 전신영, 윤지홍, 김산, 유은주, 박민석, 서율, 남유리, 박민정이 참여한다.


무대 뒤에서는 기획 정철현, 안무 김세정, 조명 조성현, 음향 이주환이 호흡을 맞춘다. 의상은 서경대학교 무대의상연구소가 맡아 시대성과 모호성을 함께 드러내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루쉰 전문가 이욱연 교수의 자문도 더해 작품의 문학적 깊이를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