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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쿠팡 김범석, ‘침묵과 삭제’의 경영을 멈춰라

개인정보 유출에도 최고 책임자는 침묵
국회 청문회 불출석, 책임 회피의 반복
노동·공정위 논란 속 ‘기록 삭제’ 의혹
신뢰 위기 앞에 서야 할 김범석의 선택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 사안 앞에서 쿠팡의 최고 책임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해외 체류’라는 한 줄짜리 사유서를 제출한 뒤 불출석했다. 사과도, 해명도 없었다. 이는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쿠팡 경영의 반복된 선택처럼 보인다.

 

 

문제의 본질은 사고 자체보다 사고 이후의 대응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당초 4,500건으로 발표됐지만, 조사 과정에서 3,370만 건으로 급증했다. 축소 발표 논란, 늦장 대응, 최고 책임자의 부재가 겹치며 기업 신뢰는 급격히 훼손됐다. ‘Wow the Customer’를 외쳐온 고객 중심 경영은 위기 국면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 불출석은 이 무책임의 정점을 찍었다. 김범석 의장뿐 아니라 박대준·강한승 전 대표까지 사임, 건강, 해외 체류를 이유로 줄줄이 불출석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국민적 사안 앞에서 쿠팡 경영진이 집단적으로 책임의 자리를 비웠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이를 ‘조직적 무책임’이라 규정한 것은 과하지 않다.

 

이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쿠팡의 민낯은 늘 사고 이후에 드러났다. 2020년 칠곡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사건 당시도 그랬다. SBS가 공개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김범석 의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메시지에는 “왜 열심히 일하겠나, 말이 안 된다”,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다. 성과로 돈을 받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까지 담겼다. 노동자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기록 관리에 더 집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같은 시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쿠팡이 과로사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던 점까지 맞물리며, 조직적 대응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후 김범석 의장이 한국 쿠팡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 내부 메신저에는 “노동부가 김범석 대표에게 직접 질문할 상황”,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대화가 오갔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은 김 의장을 미국 본사 CEO로 이동시키고, 한국 CEO를 교체하는 방안이었다. 결국 김 의장은 한국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는 김앤장 출신 자문 변호사가 이어받았다. 책임 회피를 위한 구조 조정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는 조직적인 자료 삭제 정황도 포착됐다. 다수 납품업체가 가격 갑질을 이유로 제소하자, 내부에서 공정위 조사에 대비해 파일과 이메일을 삭제했다는 보고가 오갔다. 삭제 대상에는 ‘가격 매칭 현황’ 등 핵심 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과징금 32억 원을 부과했지만, 쿠팡은 현재까지 행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쿠팡은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해임된 전 임원의 왜곡된 주장”이라며 선을 긋는다. 일부 사안에서 법적 다툼에 이겼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자 사망, 기록 삭제 의혹,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국회 불출석이라는 일련의 ‘사실의 무게’까지 지울 수는 없다.

 

경영진의 침묵과 책임 회피는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비용으로 전가된다. 민주노총 쿠팡지회 ‘쿠니언’이 김범석 의장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 사퇴나 직책 이동으로 책임을 덮을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설명과 실질적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책임이 실무진과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된다면, 쿠팡의 위기는 봉합이 아니라 확대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쿠팡 김범석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해외가 아니라 국민 앞에 서는 것, 기록을 지우는 경영이 아니라 책임을 남기는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 사퇴로 끝내는 책임이 아니라 사과·보상·재발 방지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죽어도 기록을 지우면 끝인가. 국회가 불러도 글로벌 CEO라는 이유로 책임을 피할 수 있는가.

 

김범석의 시간은 멈춰 있을지 몰라도, 책임을 묻는 사회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쿠팡이 그 시계를 계속 외면한다면, ‘신뢰 회복’이라는 말은 더 이상 경영 구호로조차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