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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정릉골 재개발②]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시공사·구청의 ‘침묵’

조합 총회 없는 700억 계약 변경, 재개발 구조적 위기 초래
시공사 포스코이앤씨, 책임 회피하며 ‘조합 내부 문제’ 방관
성북구청, 감독 권한 행사하지 않고 ‘자율성’ 명분으로 침묵
이해관계자 모두 책임 회피…조합원 피해와 신뢰 붕괴 이어져

정릉골 재개발이 위기를 맞고있다. 조합원 총회라는 최소한의 의사결정 절차 없이 700억 원 규모의 계약 구조와 금융비용 부담이 변경됐고, 그 위험을 인지하고도 시공사와 행정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위기는 구조적으로 고착됐다. 그 결과는 이자 미납 위기와 조합원 신용 하락이라는 현실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정릉골 재개발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지금이라도 위기를 막을 방법은 무엇인지 짚기 위해 3회에 걸친 심층 기획 시리즈를 시작했다. 1회에서는 총회 없이 이뤄진 중대 계약 변경의 실체를 보도했고, 2회에서는 이를 방치한 시공사와 행정의 책임을, 3회에서는 남은 해법과 책임의 방향을 차례로 보도할 예정이다. 정릉골 재개발의 위기를 둘러싼 구조와 책임을 끝까지 추적한다.

 

 

정릉골 재개발의 위기는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총회 없는 700억 원대 중대 계약 변경이라는 명백한 절차 위반이 수개월간 방치됐고, 그 과정에서 시공사와 관할 구청은 ‘몰랐다’가 아닌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①편에서 본지가 지적했듯, 문제의 핵심은 조합 총회 의결이 필요한 핵심 계약 변경이 집행부 판단으로 강행됐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도시정비법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구조적 위법은 어느 단계에서도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 시공사 포스코이앤씨, “조합 내부 문제”라는 방관

 

시공사 포스코이앤씨는 계약 변경의 직접적 수혜자다. 공사비 증액과 조건 변경은 시공사의 이해와 직결된다. 그럼에도 포스코이앤씨 측은 “조합 내부 의사결정 사항”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

 

정비사업에서 시공사는 단순 용역 제공자가 아니다. 총회 의결 여부, 정관과 법령 준수 여부는 시공사가 계약을 체결·변경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기본 전제다. 총회 의결 없는 계약 변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공사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해명은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포스코이앤씨는 불법 가능성을 인식했거나, 최소한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문제 삼지 않는 선택’을 했다. 이는 침묵을 통한 방조에 가깝다.

 

■ 성북구청, 감독 권한은 있었지만 행사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행정이다. 성북구청은 재개발 조합의 설립부터 사업 전반을 감독할 법적 권한을 가진 주무 관청이다. 총회 의결 없는 대규모 계약 변경은 통상 민원이나 내부 보고를 통해 충분히 인지될 수 있는 사안이다.

 

실제로 조합 내부에서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일부 조합원들은 계약 변경 과정의 위법성을 외부에 알리려 했다. 그럼에도 성북구청은 명확한 조사나 시정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조합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행정은 사실상 손을 놓았다.

 

그러나 감독을 포기한 자율은 방치일 뿐이다. 구청의 소극 행정은 위법 구조가 고착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몰랐다’는 변명,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시공사와 구청 모두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해명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릉골 사태는 바로 그 ‘비관여’가 위기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계약 변경은 조합 혼자서 완성될 수 없다. 시공사의 동의 없이는 실행될 수 없고, 행정의 묵인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즉, 이번 사태는 단일 주체의 일탈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며 만들어낸 구조적 실패다.

 

■ 위기는 왜 커졌나…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릉골 재개발의 위기가 여기까지 번진 이유는 단순하다. 견제해야 할 주체들이 서로를 핑계 삼아 침묵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관행’을 말했고, 시공사는 ‘조합 결정’을 앞세웠으며, 구청은 ‘자율성’을 이유로 뒤로 물러섰다.

 

그 결과, 총회는 사라졌고 조합원들의 의사는 배제됐다.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재개발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 자리에는 불신과 갈등만 남았다.

 

③편에서는 이 같은 구조적 방치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떠안은 조합원들의 현실과, 정릉골 재개발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짚는다. 위기는 어디서 멈춰야 했고, 지금이라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본지가 해법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