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다문화 청소년 수가 8만4천 명을 넘어섰다. 중학생의 3.7%, 고등학생의 2.6%. 이미 ‘소수’라 부를 수 없는 규모다.
그러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정책의 밀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실 안 현실은 빠르게 변했지만,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탈이다. 다문화 청소년의 학업 중단률은 일반 학생보다 높고, 대학 진학률은 낮다. 언어 장벽, 문화 적응의 어려움, 가정의 학습 지원 한계…. 원인은 반복해서 지적돼 왔다. 문제는 진단이 아니라 실행이다. 수년째 같은 통계와 같은 우려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청소년기의 이탈은 단순한 개인 실패가 아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잃는다. 이들이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 국가는 이미 존재감을 상실한 것이다. 교육은 사회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 문턱에서 특정 집단이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있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현장에서는 비명이 들린다. 수도권 일부 학교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30%를 넘는다. 농어촌과 중소도시에서도 비율은 빠르게 상승 중이다. 하지만 전문 교원 확충, 맞춤형 언어 교육, 진로 연계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 “중요하다”는 말은 넘쳐나지만, 체계적인 지역별 대응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다문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다.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통합 프로그램, 직업 체험과 멘토링, 지역사회 활동 참여 기회, 맞춤형 진로 설계 지원이 촘촘히 이어져야 한다. 적응은 기다린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준비된 환경 속에서 훈련되고 경험되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방치에 가까운 대응이 이어진다면, 교육 격차는 곧 사회 격차로 굳어진다. 특정 계층의 고착화, 지역 공동체의 분절, 사회 통합의 약화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국가가 교육을 통해 통합의 기반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공백은 결국 사회 불안으로 돌아온다.
다문화 청소년은 미래의 부담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다. 하지만 자산은 관리하지 않으면 가치가 사라진다.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돼야 한다.
다문화 청소년이 교실을 떠나는 동안, 국가는 더 이상 통계 뒤에 숨을 수 없다. 이 아이들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