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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옥 칼럼] 청기도 ‘염색’하는 시대

보청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지만 여전히 많은 착용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고민이 있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 오픈형 보청기(RIC, RIE)는 귀 뒤쪽 본체는 비교적 잘 감춰지지만, 귀와 본체를 연결하는 투명한 리시버 와이어가 외부로 노출되는 구조다.

이 얇은 줄이 빛을 반사하면서 오히려 더 눈에 띄는 경우도 많다. 출퇴근길 지하철, 회사, 학교 등 일상 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보청기 착용을 망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용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방식이 바로 보청기 리시버 염색, ‘바니쉬(Vanish)’다.

 

리시버 줄을 피부톤에 맞춘다

바니쉬는 오픈형 보청기의 투명한 리시버 와이어를 사용자 피부톤과 유사한 색상으로 염색해 노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기존 리시버는 투명 재질 특성상 빛 반사가 심해 귀 옆에서 도드라져 보이기 쉽다. 하지만 염색을 통해 톤을 낮추고 무광에 가깝게 처리하면 피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 기술은 미국 콜로라도에 거주하던 한 부부가 개발했다. 실제 보청기를 착용하던 남편이 외관 노출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와이어를 피부색으로 처리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후 제품화됐다. 2014년에는 미국 청각학회(AAA)에서 신제품으로 소개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한때 일부 수입사에서 유통됐지만 현재는 공식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일부 보청기 전문 센터들이 해외 직구 방식으로 제품을 확보해 제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 미용이 아닌 ‘착용 지속성’ 문제

바니쉬의 핵심은 단순한 외관 개선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보청기 착용 지속성(compliance)과 직결된 문제라고 설명한다.보청기는 착용 시간이 길수록 청취 능력과 적응도가 향상된다. 그러나 외관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크면 사용자는 점점 착용을 꺼리게 된다. 결국 ‘가지고는 있지만 안 쓰는 보청기’가 되는 것이다. 리시버 염색을 하면 귀 옆에서 보청기가 드러나는 느낌이 크게 줄어들어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다. 실제로 젊은 층이나 머리가 짧은 사용자, 직장인, 학생층에서 만족도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셀프 염색’은 위험

전문가들은 리시버 염색을 반드시 보청기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시버는 매우 얇고 민감한 부품이기 때문에 일반 염색약을 사용하거나 무리하게 문지르면 단선, 표면 손상, 착용 시 통증, 제품 보증 무효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 청능사는 리시버 표면을 미세하게 무광 처리한 뒤, 피부톤 분석과 시간 조절을 통해 균일한 착색을 진행한다. 단순히 ‘색칠’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능과 안전성을 함께 고려한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보청기, 기능에서 ‘심리’로

최근 보청기 시장의 흐름도 단순 성능 경쟁을 넘어 착용자의 심리적 만족도로 이동하고 있다. 제조사들은 본체 소형화, 색상 다양화, 초소형 귓속형 모델 등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오픈형 구조 특성상 리시버 와이어 노출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 이 틈새를 보완하는 방식이 바로 리시버 염색이다. 실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귀에 걸려 있는 느낌”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보청기는 이제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기기를 넘어, 삶의 질과 자존감에 직접 영향을 주는 생활 도구가 되고 있다.

 

< 바니쉬의 주요 특징>

① 시각적 은폐 효과
피부톤에 맞춰 여러 색상을 블렌딩할 수 있어 밝은 피부부터 중간·어두운 톤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염색 후에는 리시버가 귀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눈에 띄지 않는다.

② 안전성
전용 염료는 저자극·무독성 성분으로 설계돼 피부 접촉에 대한 부담이 적다. 염색된 색상은 비교적 오래 유지되는 편이다.

③ 빠른 시술
전용 키트를 이용하면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이 가능하며, 염색 과정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다만 정확한 톤 매칭과 표면 처리에는 숙련도가 필요하다.

 

외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수록 사용자는 더 오래, 더 자연스럽게 보청기를 착용하게 된다. 리시버 염색 ‘바니쉬’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보청기 착용 문턱을 낮추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보청기 사용을 고민하거나 이미 착용 중이지만 노출이 부담스럽다면, 전문가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