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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수로 만나는 세계명화]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이 표현하지 못한 변하는 빛, 숨겨진 빛을 담아 원작과 같은 크기로 작업한 혼자수 작품을 통해 세계명화 작품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클림트는 누구인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화가로 1862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나 56세의 나이로 빈에서 죽었다.


그는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헤미아 출신의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였다. 그가 나중에 금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작업을 펼칠 때 아버지의 수공예품에 대한 기억이 크게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에게서 음악에 대한 열정도 물려받았다.


1876년 14살 때, 클림트는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883년까지 이 학교에서 다양한 장식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탄탄한 기본기를 닦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실 클림트는 수수께끼 같은 화가다.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으며, 사생활은 철저히 숨겼다.

 

 

 

외설인가, 예술인가
그는 생전에 이미 유명 작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영욕이 교차하는 경험을 거듭했다. 그가 빈번하게 그린 나체와 섹스 장면이 줄곧 문제가 됐다. 클림트 사후 약 50년 동안 클림트나 그의 동료이자 제자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판도가 달라졌다. 관심도가 급부상하더니 이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다. 한때는 외설로 여겨졌던 작품이 지금은 관능미와 에로티시즘으로 찬양받는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인간의 육체가 발하는 미묘한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클림트는 ‘나체의 임산부’를 비롯해 ‘벌거벗은 사람들’, ‘혼돈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도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병들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고뇌에 찬 인간의 불안한 심리와 필연적인 운명과 삶의 부조리를 표현했다.

 

클림트의 여인
자신의 작품세계처럼 클림트는 평생 혼인하지 않고 많은 여인과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향락 속에 빠진 듯한 생활 속에서도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갈구하며 많은 모델과 관계했지만, 이상적인 사랑을 나눌 만한 여인을 찾지는 못했다. 그가 가족력이 있는 뇌일혈이 아닌 스페인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을 때 무려 14명의 여인이 친자확인소송을 냈을 정도다.


그러나 에밀리 플뢰게라는 여인만은 클림트의 진정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플뢰게는 클림트와 늘 함께한 정신적 반려자였지만, 두 사람이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클림트의 명작 〈키스〉의 여주인공이 플뢰게라고 짐작하고 있다.

 


 

정신적 반려인, 플뢰게
이 작품은 장식된 정교한 예복을 입은 남녀가 포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 같지는 않다.


여성이 수동적인 것을 넘어서 오히려 거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는 입술이 아니라 볼에 키스하고 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여성의 표정도 황홀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두 사람은 몸을 잘못 놀리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절벽 위에 서 있다.


이 그림은 자화상으로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를 그렸다거나, 같은 해 황금시대의 초상화를 위해 모델을 섰던 미용실 주인이면서 사교계 여성이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Adele Bloch-Bauer)라는 설도 있지만, 역시 플뢰게가 유력하다.

 

사랑을 되찾아 준 작품 〈키스〉
클림트는 이상적 연인인 플뢰게에게는 키스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플뢰게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영감을 얻었고, 자신의 관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플뢰게는 클림트가 다른 여자와 밀회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는데, 이후 완성된 이 작품, 〈키스〉를 보고 다시 클림트의 사랑을 받아줬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의 신비함에 이끌리고 더 황홀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드레스에 두드러지는 원형의 생물 형태와 남자의 옷에 보이는 힘찬 직사각형 장식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듯 강한 대조를 이룬다.

 

 

 

 

얼굴에 주름이 잡힌 남자의 얼굴, 흉측하게 굽은 여자의 발가락과 일그러진 손, 부패 중임을 암시하는 오싹한 피부색 등은 클림트의 원시 표현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요소들이다. 관람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식적·관능적 과도함 역시 클림트 예술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클림트의 〈키스〉
그러지 않아도 클림트의 표현주의 양식은 당대인의 반감을 사는 원인이 됐는데, 〈키스〉를 그릴 당시 클림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빈 대학의 천장 도안으로 그린 〈철학〉, 〈의학〉, 〈법학〉 시리즈가 화근이었다. 그는 이 천장화를 이유로 통렬한 경멸을 받고 있었다.


작품 속의 나체로 인해 그의 철학, 의학, 법학에 대한 해석은 포르노로 비하됐고, ‘비정상적인 초과’로 평판을 손상시켰다는 평으로 내리막길을 걷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 가장 유명한 작품 〈키스〉는 이러한 평을 한 번에 뒤집어 놨고,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벨베데레 박물관에서 구매해,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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