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아침마다 꽃 상태를 살피는데, 이젠 겁부터 납니다.”
영암 도포면 영호마을의 한 농민이 시든 배꽃을 바라보며 내뱉은 말이다. 봄기운이 무르익어야 할 3월 말, 예상치 못한 강추위가 찾아오면서 영암배 주산지에 큰 상처를 남겼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영암군 지역은 최저 기온이 영하 4℃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이 시기가 배꽃 개화기였다는 점이다. 영하의 기온은 꽃의 암술과 배주에 치명적이다. 실제로 피해 농가 곳곳에서 꽃이 검게 변하거나 고사한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현장을 찾은 우승희 영암군수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 3일 도포면 등 피해 지역을 직접 돌며 배밭 곳곳을 점검하고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일부 과수원은 피해율이 70%를 넘어섰고, 전체 평균 피해도 2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 군수는 현장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개화기 이후 꽃눈 중심의 정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농가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영암군은 단기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기상이변 대응 전략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우 군수는 “저온 피해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예방시설을 늘리고, 재배기술 교육도 강화해 앞으로의 피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가의 피해는 단순한 통계로 끝나지 않는다. 올해 수확량이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면 농가의 생계 기반도 흔들릴 수 있다. 특히 고품질 배로 명성이 높은 영암배의 브랜드 가치도 함께 위협받는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배농사는 정말 장담 못 해요.”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농민의 말처럼, 기후가 농사를 흔들고 있다. 하지만 영암군은 이를 ‘예외적 재난’이 아닌, ‘현실적 과제’로 받아들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승희 군수는 “농가의 절박함을 직접 느낀 이상, 말보다 빠른 대응이 우선”이라며 “농민과 행정이 함께 지혜를 모아 영암배의 명성을 지키고, 농가 소득 안정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