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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땅’ 깨운다… 무안군, 50년 묵은 토지 지목 변경 추진

- 1973년 농지법 이전 건축물 대상… 실제 이용 현황 반영해 재산권 정비
- 개발행위허가 없이 지목 바로잡기… 군민 재산권 행사 숨통 튼다
- 2개년 걸쳐 429필지 정비… “군민 불편 해소에 집중”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전남 무안군(군수 김 산)이 토지 행정의 오래된 틈을 메우는 일에 나섰다. 이른바 ‘지목 변경’ 사업. 땅은 오랫동안 집과 창고로 사용돼 왔지만, 서류상으론 여전히 ‘논’이나 ‘밭’으로만 표시돼 있는 토지. 그 오랜 불일치를 바로잡는 일이다.

 

무안군은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개년 계획으로, 1973년 농지법 시행 이전에 주택이나 창고로 사용되고 있던 토지를 집중적으로 정비 중이다. 50년 가까이 방치된 토지의 지목을 바로잡는 것은 단순한 행정 정리가 아니다. 토지의 이름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곧 주민의 재산권을 회복하는 일과 직결된다.

 

■왜 1973년 이전인가?

1973년 1월, 농지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농지에 대한 법적 규제가 본격화됐다. 당시엔 토지 이용 현황보다 ‘지목’이 우선시되는 행정 체계가 작동했고, 그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현행 기준으로 정비가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다.

 

당시 마을 곳곳엔 축사, 창고, 주택이 자연스럽게 농지 위에 지어졌고, 대부분은 별도의 인허가 없이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조성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개발 규제와 토지 이용 기준이 정교해지면서, 이들 토지는 ‘사용은 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땅’이 되어버렸다. 대출, 매매, 상속 등 재산권을 행사하려 할 때 걸림돌이 되어온 이유다.

 

■‘지목’이라는 말이 낯설다면

지목은 땅의 ‘법적 성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논은 ‘전(田)’, 밭은 ‘답(畓)’, 집터는 ‘대지’, 창고는 ‘창고용지’라는 식으로 구분된다. 문제는 실제 이용과 지목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다. 예를 들어 창고가 있는 땅인데도 법적으로는 ‘논’으로 남아 있다면, 그 땅을 창고 부지로 활용하거나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런 땅은 농지로 분류되기 때문에 농지법상 거래가 제한되고, 농지증이나 개발행위허가 등 복잡한 절차가 따라붙는다. 결국 현실은 주택이나 창고인데, 법적으로는 농지로 묶여 있는 셈이다. 군민 입장에서는 자산임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행정적으로도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50년 묵은 행정의 틈, 마침내 정비 시작

무안군은 지난해 총 429건의 지목변경 대상 필지를 조사해 이 중 223건의 변경을 완료했다. 나머지 필지들도 올해 안으로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변경 대상은 1973년 이전 건축물 중 주택, 창고 등으로 실제 사용되고 있었던 부지다.

 

이 과정은 군청 민원지적과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으며, 현장 확인과 주민 요청, 공적 자료 조사 등을 거쳐 실제 이용 현황을 면밀히 따진다. 단순히 행정 문서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실존하는 공간의 역사를 존중하면서 행정이 그에 맞춰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농지였던 내 집터, 이제야 이름을 찾았다”

지목 변경을 마친 주민들 사이에서는 “답답했던 속이 풀렸다”는 반응이 많다. 창고를 증축하려다 허가가 안 돼 포기했던 일,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다 거절당한 기억, 자식에게 땅을 물려주려다 ‘이게 왜 논이냐’는 말을 들었던 경험까지. 모두 법적 지목과 현실의 불일치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이번 사업으로 지목이 바뀌면, 해당 토지는 대지나 창고용지로 명확히 분류된다. 이를 통해 건축 허가, 금융 거래, 상속 등 모든 절차에서 합법적 기준에 따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김수영 무안군 민원지적과장은 “단순히 지목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주민의 권리를 되돌려드리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읍면과 협조해 개별 통지 및 현장 홍보를 병행하고, 대상 주민 모두가 불편 없이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행정은 종종 너무 늦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번엔…

행정은 늘 뒤따라온다. 주민이 수십 년을 살아온 땅, 함께 살아온 삶의 흔적을 행정 문서가 따라잡는 데는 반세기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은, 행정이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안군의 이번 ‘지목 변경 사업’은 단순히 땅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용된 삶의 터전에 마침내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행정의 언어로 땅과 사람의 관계를 복원하는 이 변화는, 작은 것 같지만 주민들의 삶에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