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오명숙 기자 | 1851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 앞바다.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조난을 당했다. 외딴 섬에 갑작스레 찾아든 낯선 이들을 향해 비금도 주민들은 두려움 대신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말도 통하지 않던 시절, 이국의 선원들을 돌보고 치료한 것은 순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174년이 흐른 지금, 그 인연이 다시 섬을 깨운다. 오는 5월 24일, ‘2025 신안 비금도 샴막 예술축제’가 열린다. 지난해 프랑스를 중심으로 첫걸음을 뗀 이 축제는 올해 유럽 17개국 100여 명의 예술인과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문화축제로 확장됐다. 이름 그대로 ‘샴페인’과 ‘막걸리’ 두 문화의 상징이 만나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엮인다.
축제 참가자들은 나르발호가 난파된 해역과 당시 선원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함께 탐방하며, 섬의 역사와 만남의 순간을 되짚는다. 그리고 바로 그 기억 위에, 한국과 유럽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 퍼포먼스와 식문화 체험이 더해진다. 비금도의 민속 공연, 샴페인과 막걸리 시음, 양국의 음식과 공예를 함께 경험하는 시간은 관광을 넘어선 문화의 깊은 교류이자, 서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이번 축제의 백미는 국제 컨퍼런스다. 파리 시테 대학교의 엠마누엘 후 교수는 “비금도의 고래와 샴페인, 1851년 우리가 몰랐던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선다. 나르발호 난파는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 있었던 ‘비공식 외교’로 새롭게 조명된다. 이어 주한 유럽상공회의소의 스테판 총장, 프랑스상공회의소 소니아 샤이엡 대표도 함께 토론에 참여해, 문화예술을 통한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짚는다.
신안군 관계자는 “비금도는 단순히 역사적 장소가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상징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예술과 문화라는 언어를 통해 지속 가능한 국제협력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샴페인과 막걸리가 건배를 나누는 자리. 그것은 곧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기도 하다. 작고 외딴 섬 비금도가 이제는 세계를 향해 말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연결돼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