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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오뚜기,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경쟁사 글로벌 확장, 오뚜기는 6분기 연속 수익성 추락
내수 안주와 혁신 부재, 가격 인상으로 ‘착한 기업’ 이미지 붕괴
총수 일가 내부거래와 세무조사로 지배구조 불신 확산
혁신과 투명성 회복 없이는 ‘갓뚜기’ 복귀 사실상 불가능

국내 라면 업계가 재편되고 있다. 삼양식품과 농심은 글로벌 무대에서 K-푸드 열풍을 타고 빠르게 외형을 확대하고 있지만, 오뚜기는 6분기 연속 수익성 하락이라는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갓뚜기’라는 애칭을 얻으며 소비자 신뢰를 상징했던 기업이 왜 라면 빅3 중 유일한 부진 기업으로 전락했는가.

 

 

오뚜기의 하락 곡선은 단순한 경기 변동이나 원가 변수 때문이 아니다. 오뚜기는 성장 전략에서 근본적인 방향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업 확장에서 뒤처졌고, 내수 중심에 안주한 채 혁신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매출은 유지되지만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역성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오뚜기는 변화를 위한 결단을 주저했다.

 

무엇보다 소비자 신뢰 하락은 뼈아픈 지점이다. 오뚜기는 그동안 착한 기업 이미지와 가성비 브랜드라는 평판을 쌓아왔지만 최근 가격 정책은 이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되는 흐름에서도 오뚜기는 지난 정치 공백기를 틈타 라면·식용유 등 주력 품목 가격을 연이어 올렸다. 시장에서는 “원재료 부담 해소가 가능한데도 가격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소비자는 묻는다. ‘그렇게 말하던 서민 브랜드가 맞는가’라고.

 

반면 경쟁사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미국·동남아·유럽 등 전 세계로 시장을 확장했고, 농심은 현지 공장 증설과 글로벌 영업 전략을 통해 해외 매출 비중을 50%에 근접하게 끌어올렸다. 고환율은 이들에게 기회였다. 하지만 오뚜기는 해외 매출 비중이 10% 안팎에 머무르며 K-푸드 열풍의 수혜에서 사실상 소외됐다. ‘내수기업’이라는 조롱 섞인 평가가 뒤따르는 이유다.

 

오뚜기의 문제는 단기 실적 부진을 넘어 구조적 취약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주력 제품 라인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고 소비자 니즈에 대응한 혁신 제품도 부재하다. 컵라면 시장에서 ‘육개장 컵’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간편식(HMR) 시장에서도 CJ제일제당과 대상, 풀무원에 밀려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브랜드 진화가 멈춘 동안 시장은 이미 새로운 경쟁 단계로 넘어갔다.

 

오뚜기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윤 구조와 지배구조의 투명성 논란이 실적 부진과 맞물리며 기업 신뢰를 전방위로 흔들고 있다. 최근 국세청 조사3국이 오뚜기와 총수 일가 관련 기업인 ‘면사랑’을 대상으로 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은 이러한 불신의 방증이다.

 

문제의 핵심은 ‘내부거래’다. 면사랑은 오뚜기의 핵심 원재료 협력사인데, 이 회사 지분은 함영준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오뚜기와 면사랑 간 거래 규모는 연간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오뚜기 내부 이익이 총수 일가 사익으로 이전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소비자에게는 가격 인상으로 부담을 전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총수 일가 배당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라면 이는 ‘착한 기업’이 아닌 ‘기만적 기업’이다.

 

오뚜기는 과거에도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다. 라면 가격 담합, 유통점 가격 통제,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바 있으며 2017년에는 총수 일가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편법 승계를 준비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업 지배구조가 여전히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오뚜기는 비상경영을 내세우며 조직 효율화와 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 아니다. 시장은 오뚜기에 묻는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경영하는가.” 혁신 없는 전략,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 소비자 신뢰 훼손. 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오뚜기의 위기는 단순한 실적 부진이 아니라 ‘존재 위기’가 될 것이다.

 

오뚜기가 선택할 길은 하나다. 혁신과 신뢰 회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할 상품 경쟁력,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소비자와의 신뢰 계약을 동시에 복원하지 못한다면 오뚜기는 시장과 소비자 모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갓뚜기’라는 별칭은 스스로 지켜야 할 명예였지 영원한 보증수표가 아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